일본 애니메이션은 겉맛 들었다던지, 주제의 과잉화 때문에 비판을 받긴 하지만 간혹 정말 괜찮은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2007년에 시작한 "코드기어스 루루슈" 1기의 성공적인 완결로 2기가 나왔고 이제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 작품을 평해 보면, 보는이를 통쾌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주인공인 루루슈는 왕의 힘이라는 기어스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 인간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어 버린다. 저주받은 힘을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루루슈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근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하나 보다. 눈 하나 깜짝안하고 사람을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루루슈는 선보다는 악에 가까워 보인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주장이 너무 강하다. 모두가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상식에 어긋나 있는 행동을 일상적으로 저질러 버린다. 이번회를 상당히 흥미있게 보면서도 왠지 작가가 방향을 잃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결국 지금까지 알고 있던 루루슈의 기억은 모두 거짓이며, 절대 악으로 묘사됐던 샤를 황제가 어쩌면 루루슈보다 더 정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안느의 등장은 이야기의 전개에 맞지 않는다. 왠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리안느의 기어스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데, 지금까지 죽은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 살아난다는게 지금까지의 이야기 전체가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알수 없는 C.C 의 행동. 왜 C.C는 루루슈의 행동을 지지하는 걸까. 세상의 모든 힘을 얻은 루루슈에게 더 이상의 적은 없어 보인다. 무적이 된 주인공처럼 재미없는게 또 있을까. 루루슈의 기어스는 점점 강해지는 거 같다.
코드기어스의 작가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서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확실히 작품에는 일본은 일레븐이라는 노예 상태로 살아간다. 침략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하지만, 루루슈의 학교를 보면 전혀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다. 귀족의 자제로 편한 생활, 외부의 고통에는 무관한채 그들만의 축제속에 살아가는 무심함. 프레이야의 공격에도 학교는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보는 일본인은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들의 과거 행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반성할까. 아니면 그저 아무렇지 않은채 현실속의 일상에 맡긴 채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걸까. 난 일본사람이 이 작품을 보면서 그저 하나의 오락거리 그 이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브리타니아, 일레븐, 제로, 흑의 기사단, 나이트 오브 라운즈 이런 단어들은 일본 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질적인 단어들이다.
코드기어스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없는 일상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제로의 활약에 통쾌함을, 샤를의 허무주의에 냉소를, 스자쿠의 자기 모순에 혐오를, C.C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작가의 세계관에 흥미를 느끼면서 3시즌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