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spective on Kurosawa Kiyoshi
공포영화의 정의
내가 생각하는 공포영화는 이런 것이다. 공포영화라는 것은 예의가 없다.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흔히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애기를 듣는다. 그래서 규제가 있어야 된다는 믿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공포영화는 환타스틱한 측면이 많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다. 그리고 절대 주류가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를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공포영화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코믹한 음악을 집어넣는다면 그 순간 코믹영화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화려한 액션장면이 나오면 아무리 공포스러운 상황을 만든다고 해도 액션영화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장르와 공존하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공포영화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단 살인마’ 와 같은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포영화하면‘링’ 이 떠오르고 ‘사다꼬’ 가 마치 귀신의 전형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다양하던 이미지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헐리우드의 경우를 보면, ‘로즈마리의 아기’ ‘엑소시스트’ ‘죠스’ ‘에이리언’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양들의 침묵’ 에서의 한니발 렉터 박사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 또는 이 세계에 소속된 자가 아닌 이미지로 나온다. 그래서 감옥을 나올 수 있음에도 끝까지 감옥에 있고, 마지막에 스탈링 과 나누는 교감에서 얼음장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에일리언’ 의 경우를 보면, 외계생명체 에일리언 이 천천히 입을 벌리고 사람을 먹는 장면에서 진정한 공포영화의 실체가 들어나는데 그것은 이 세계에서는 절대로 이해 될 수 없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가 사실은 내가 이해한 것과 다름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죽을때까지 절대 벗어날수 없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에일리언 2’는 절대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액션으로 일관하는 장면을 볼 때 황당하면서도 한심했다. 마지막에 ‘시고니 위버’가 에일리언과 싸울 때 입속에서 튀어나오는 척수를 가볍게 물리치고 평화적으로 되는 상황이 되면서 결국 세계는 이해가능하다는 결론을 보면서 공포영화가 패배하고 우롱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란 무엇인가 ?
지금까지 너무 공포영화 애기만 했는데, 그럼 이제부터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정의에 대해서 말하겠다. 세계를 그리기 위한 기술로서 카메라는 물리적인 기능이 있으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거기에는 어떤 거짓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기계에 불과하다.
영화는 과거의 영상을 보여준다. TV의 생방송이 보여주는 리얼타임 영상은 자기가 찍고 싶은 걸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절대 없어지지 않으며, 과거에 확실히 존재했던 사실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축적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 기간이 지나면 소멸하는 그래서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역사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나 픽션이나 똑같이 해당된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과정 이다. 닫힌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서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면서 보이는 것의 극한까지 경험하는 것이다. 어둠이 영화 전체를 덮을 수는 없다. 거기에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며 ‘소리’를 통해 존재를 확실히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람은 그 자체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 거기에는 소리가 있어야만 존재를 의식할 수 있다.
탈장르화의 시대 - 1970년대 헐리우드 영화
‘도플갱어’ 는 단순한 공포영화로써가 아니라 모든 장르를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장르영화의 장점이라면 감독과 관객 사이에 약속된 것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처음 30분간은 장르로서의 영화를 보여주고 그 후로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시간 제한이 없다면 장황하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1970년대 헐리우드 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 시기는 장르가 무너진 시기였다. 또한 비디오가 없던 시기였다. 그래서 영화는 오직 영화관에서만 관람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영화들에 자연스럽게 빠져든 것 같다. 이 시기의 감독이라면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카펜터’ ‘윌리엄 프리드킨’ ‘브라이언 드팔마’ ‘토비 후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현역감독 중 최고를 뽑으라면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감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로버트 알드리치’ 이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꿈이고, ‘샘페킨파’ 정도라면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공포영화의 철학 – 일상성의 공포, 삶과 죽음의 관계
공포영화를 진정 무섭게 하는 건 어떤 것일까? 흔히 공포영화를 보면 어떤 장면부터 무섭다는 것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 그러면 막상 그 장면이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사람들은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나의 경우를 보면 무서운 장면을 알기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무서운 장면이나, 평상시의 장면이나 똑같이 찍는다. 그렇게 되면 등장인물이 밥을 먹는 장면이나, 그냥 길을 걷는 장면들 같은 평상시의 행동들까지 모든게 무서워진다. ‘큐어’ 에서의 라이터, ‘카리스마’ 에서의 나무, ‘카이로’ 에서의 얼룩 같은 평상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대상들이 진정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무서운 것만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여기서 한단계 다 나아가서 삶과 죽음의 관계를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다. 죽음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상태로 변하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것도 없고 그 상태가 영원히 되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영화의 지향점은 유한한 존재로써 언젠가는 죽고마는 인간과 죽음 이후에 영원히 지속된다는 대치 상태 에 대한 것들이 될 것이다.
P.S. 이 글은 2004년 3월 11일 서울아트시네마 에서 개최한 일본의 공포영화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의 강연회를 듣고 정리한 글이다. 좋아하는 감독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서 기분이 좋았다. 생각보다 나이가 젊었고, 머리가 굉장히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여러 작품들도 접했는데, 4~5편 정도 본 거 같다. "큐어", "카리스카", "도플갱어"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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