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지만, 그녀의 현실적이고 섬세한 문체는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했다. 솔직히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때는 계속 읽어야 되나 고민했었다.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하는 작가의 문체는 좋았지만, 내용이 개인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에피소드 라서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다 읽는 지금은 그때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한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 운명적인 사랑, 만남과 이별 과 같은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생각해 볼수 있게 해주어서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되는것, 만일 시간을 거슬러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츠구미' 와 '쿄이치'의 만남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장병을 앓아서 발작을 일으키고 죽음을 의식한 '쿄이치'와 어린시절부터 아파서 조금만 심한 운동을 해도 앓아 누워버리는 '츠구미'는 몇 마디의 말과, 눈빛만으로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비록 내일 죽을지라도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온 가치가 있은게 아닐까...
"츠구미는, 자기 목숨을 걸었던 거야, 라는 생각, 요코 언니는 벌써 감지했을 그 생각이 이제야, 놀라움과 함께 머리를 스쳤다. 쿄이치보다도, 미래보다도,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츠구미는 사람을 죽이려 했다. 자기 체력의 한계를 이미 넘어선 작업 끝에 상대가 죽는다 한들, 자신의 소중한 개의 죽음보다 무겁지 않다고 굳게 믿고서."
삶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츠구미'는 '쿄이치'가 기르던 개 '겐고로'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되자.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매임밤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결국 목적을 이루게 되자 무리했던 몸이 버티지 못하고 중태에 빠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만 하는 '츠구미' 였지만, 사실은 언제나 외로웠던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오랜 시간 같이 해온 사촌 '마리아' 와 운명적인 상대인 '쿄이치' 이 두사람 외에는 마음을 여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과 '쿄이치' 사이를 연결해 준 '겐고로'가 살해당하자 견딜수 없는 분노를 갖게 된다. 그것은 정신은 이 세계 끝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무한했지만, 육체는 한없이 약하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갇쳐 살아온 그녀에게 닥친 시련은 정상적인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해서 몇 배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복수하지 않았다면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츠구미' 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항상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자기 자신을 막을 수가 없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올바른 사람이면 좋겠다." 자신이 옳다고 한 행동으로 그녀는 이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다. 이대로 죽는다면 너무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게 결코 상냥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삶의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너무나 매력적인 그녀가 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은총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녀는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불이 꺼지고, 이 병실이 거대한 어둠이 되면 정말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어. 울고 싶을 정도다. 울면 지치니까, 어둠을 견디는 거야. 조그만 등 켜놓고 이 편지 쓰고 있다. 의식이 멀어졌다. 다시 돌아왔다, 오락가락한다. 조금만 더 심해지면, 꼴까닥이겠지. 그러면 쓸모없는 주검이 되고, 바보 같은 너희들은 엉엉 울겠지." 죽음이 다가온 순간까지도 유머를 발휘할 수 있는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할지라고 관심을 갖는것, 그리고 자신과 영혼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서 사랑을 하는것. 나에게 죽음의 손길이 온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슬퍼해 줄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을 읽고서 왠지 가슴이 따뜻해진다.
P.S. 2003.12.25 에 작성한 글이다. 크리스마스에 할 일이 없었던 모양이야. 이시기는 독서모임에 한참 빠져있을때라서... 이 책은 독서모임을 같이 하던 친구한테 선물로 받았다. 근데 지금 찾아보니 책이 없다. 잘 간직해야 하는데, 굳이 돈을 주고 살 필요성은 못 느낀다. 책 내용이 안좋아서가 아니라 취향 문제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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