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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7년의 밤 (2012.3.13)

by leeyj. 2012. 3. 13.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이전에 읽어본적이 없지만, "7년의 밤" 을 다 읽은 지금 전작들도 많이 궁금해졌다. 책을 펼치면 작가가 창조한 "세령마을"의 지도가 나온다. 우리나라에 실제 이런 마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디테일하다. 책을 읽으면서 지명이나올때마다 앞에 지도를 참고하면서 읽었는데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책은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주인공인 최서원의 시점이 아니라 아버지 최현수의 보안팀 부하직원인 안승환이 쓴 소설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강지영이 새로 살 집을 보고 오라고 최현수에게 부탁하고, 길을 잘 몰라 헤매다 호수가 있는 댐 에 오면서 갑자기 튀어 나온 어린 소녀를 차로 치면서 시작된다. 너무 당황한 현수는 소녀를 댐에 올라가 (보안팀장이니 열쇠가 있었음) 던져버리게 된다. 사실 이 소녀는 이 마을의 유지인 오영제의 딸인 오세령 이었는데, 잠을 자다 아버지에 의해 구타를 당하고 도망다니다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면서 오영제가 딸의 범인을 찾는 과정과, 최현수, 안승환, 강지영, 문하영 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소설속에서 최현수는 저지대마을 사람들 모두를 죽인 살인마가 되어 사형집행을 당한다. 그는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2011년 최서원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그 당시 기사를 담은 "선데이매거진" 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고 고립된다. 그래서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상 모든 일의 근원은 오영제라는 남자한테 있는데, 그는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위해 아내인 문하영과 딸인 세령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길들인다. 견디다 못한 하영은 이혼하자고 서류를 보내고 프랑스로 도망가고, 홀로 남겨진 세령은 끔찍한 악몽같은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세령의 바로 옆집에 살고 있던 승환은 세령의 상황을 눈치채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게 되면서 세령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소설형식으로 기록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은 인물이라 하면 최현수의 아내인 강지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는 어린시절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살다가 동생과 같이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동생의 소개로 만난 최현수를 만나 미래를 꿈꾸게 되는데, 이 당시 최현수는 촉망받는 프로야구 선수였다. 그러다 알수 없는 왼쪽 팔 마비 증세로 야구 생활을 마감하고 인생의 실패자로 살게 된다. 그녀는 술 좋아하고 전화 안받는 무책임한 남편 대신 서원이와 같이 살 자신만의 집을 얻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결국 3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게 된다. 그녀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여자다운 매력이 없고 아주 사납게 생겼다고 묘사하고 있다. 세령마을에 와서도 그녀는 대출을 갚고 3년후에 자신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경비일을 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강지영의 죽음이 나오는데, 자기 딸을 죽인 최현수 일가족을 모두 죽이려는 오영제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다. 그저 아들과 같이 아파트에서 인간답게 사려고 했던 여자, 그녀는 정신이상자에 의해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채 죽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인물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오영제, 최현수, 강지영, 문하영의 관점에서 보여지는데 입체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오영제의 심리상태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사는 남자, 아내와 딸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문하영의 일탈과 세령이의 죽음이 삶 전체를 흔들 큰 사건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게 최현수 일가족을 다 죽일 만큼의 이유였는지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영제가 아내와 딸을 그만큼 사랑했나.

오영제의 광기는 결국 저지대 마을 전체를 물로 뒤덥고 수 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채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7년후 사건의 원인이 된 최서원, 안승환 두사람을 불러들여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추리소설은 형식을 띠고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중산층 소시민의 몰락과 절망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최현수, 강지영 부부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