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년 - 미래에 대한 두려움
Prologue
만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은 대개 어린이들이 보는 것, 그래서 유치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하철에서 만화를 꺼내 읽는데 주위의 시선에서 그런 걸 느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는데, 볼수록 그 대단한 상상력과 세계관에 감탄하게 된다.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일까?
20세기 소년의 시작은 ‘켄지’ ‘오쵸’ ‘요시츠네’ ‘케로용’ ‘몽’ ‘동키’ ‘유키지’ 의 어린시절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와 망상에서 시작된다. 어린시절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에 대한 생각이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게 된다. 1997년 도쿄에는 ‘친구’라 불리는 신흥종교가 있는데, 너무나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친구’ 의 말씀을 경청한다. 그런데 ‘친구’의 진정한 목적은 인류의 멸망이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온몸에 피가 빨리면서 죽는 바이러스를 세상에 유포한다. 2000년 12월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켄지’ 와 그의 친구들은 맞서 싸우게 된다.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치밀한 구성”
‘우라사와 나오끼’ 는 ‘친구’의 정체와 손가락 모양의 마크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데,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케로용’의 결혼식에서 ‘켄지’ 는 어린시절 ‘개구리제국’ 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장면은 바로 현재로 넘어가서 ‘친구’의 ‘개구리제국’ 에 대한 언급. ‘동키’의 장례식에서 친구들은 1969년에 있었던 달 착륙 에 대한 추억을 생각해 낸다. ‘동키’는 그 장면에 유난히 감동을 받지만, ‘암스트롱’ ‘올드린’과 달리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퀘도만 돌았던 ‘콜린즈’에 대해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 현재 ‘친구’는 그 시절을 기억하고 눈물을 흘린다. 이런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친구’에 대한 의혹은 증폭된다.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은 그 전까지 독자가 생각하던 이야기 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의 만화가 놀라운 점은 독자에게 ‘친구’에 대한 단서를 알려주는 방식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대사 하나에 결정적인 단서가 숨겨져 있어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점. 또한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생명력을 집어넣어서 애정을 갖게 만드는 이야기 방식,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들과 아무렇지도 않는 일에 상처받는 연약한 정신구조, 그럼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는 성장기의 정신적 외상…
“한 사람의 의지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악몽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는 방법
‘20세기 소년’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끈 인물은 어린시절 언제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언제나 가면을 쓰면서 옥상에서 외계인에게 ‘제발 나에게 친구를 주세요’ 라는 간절한 소원을 빈 ‘사다키요’ 라는 캐릭터다. 초반 ‘친구’의 존재를 설명할 때 가장 큰 의혹을 불러 일으킨 인물이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연민을 느꼈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서지 못해서, 나중에 아무도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더구나 오랜만에 예전의 학교로 찾아갔는데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졸업사진을 비롯해서, 소풍사진까지 어디에도 자신의 얼굴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다키요’는 세상에 대한 절망을 느끼고, 유일하게 그와 어울려준 ‘친구’에게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역시 그를 이용만 할 뿐 그의 진정한 존재가치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런 ‘사다키요’를 구원해 준 건 어린시절 은사였다. 선생님은 ‘사다키요’에게 소풍에서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준다. 이 순간 ‘사다키요’를 둘러싸고 있던 절망과 분노 의 감정은 사라지고, ‘친구’의 세계멸망을 막기 위해 목숨을 던지게 된다. ‘사디키요’ 가 죽는 순간 어떤 슬픔을 느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각성을 했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를 짓누르는 과거의 악몽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평생을 수동적이고, 절망감에 살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달은채 죽은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우라사와 나오끼 가 생각하는 지금의 일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켄지’의 누나 인 ‘키리코’는 어떻게 해서 ‘친구’와 만나게 됐고, 왜 그의 터무니없는 계획에 동참하게 됐을까, 평소의 성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는 어떤 것일까?
‘친구’는 진심으로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총에 맞아서 죽는 순간 그는 사기꾼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다면 ‘친구’의 딸인 ‘칸나’의 능력은 진짜일까?
Epliogue
불가해한 현상을 소재로 한 ‘20세기 소년’ 은 지금의 세상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생각을 바꾼다면 좀 더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즐거웠고, 이런 느낌을 가져다 준 ‘우라사와 나오끼’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
P.S. 2003.9.24 에 작성한 글이다. 독서모임 회원중에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보게 됐다. 그당시 아직 완결이 안된 상태였는데, 책이 너무 많아서 구매는 못하고 대여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미스테리 형식인데, 예측불가능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지금이라면 완결을 읽을수 있겠지만 크게 궁금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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