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하루하루 일상을 살다보면 어느 덧 너무나 익숙해져서 오래전 부터 이렇게 살아온 거 같다는 착각이 든다. 마치 이런 삶 말고는 다른 건 생각도 못한 것 처럼.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자각. 그런데 막상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은 좀더 나아져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뭘해야 할까. 공부를 할까, 무기력한 생각을 없애기 위해 운동을 할까, 아니면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갈까. 그러다 어느새 눈앞의 현실에 집중한다.
지난번 모임에서 "엄청 멍충한" 이라는 책 제목을 들었을 때 그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멍청한 사람들의 이야기 인가, 제목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세상에 대한 이상한 생각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야기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매일 밤 꾸는 꿈 처럼, 수 많은 이미지들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자살에 의한 타살" 은 할아버지 부터 내려온 유전적 특성으로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착각한 셰인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버지 에게 구타를 받은 크리스토퍼 라는 아이,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아널드 간의 3사람의 이야기 이다. 후반부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는 아널드의 극적인 심리변화는 읽으면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셰인, 아직도 사람이 먹고 싶어?], 아널드가 물었다. 셰인은 이제야 아널드가 조금 달라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아널드의 눈을 피했다. 아널드는 고개를 슬슬 가로저으며 창백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너는 이해할 줄 알았는데?]"
평생을 도덕적으로 남을 위해 살아온 아널드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육체적 고통 앞에 정신은 쉽게 허물어진다. 이 구절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처음에는 놀라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악마가 된 아널드에 의해 죽는 순간 셰인은 영혼이 통하는 존재인 크리스토퍼 에게 [크리스토퍼, 착하게 살아야 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이 사건을 경찰은 아널드가 셰인에 의해 죽었다고 발표한다. 진실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전해들은 사람들 역시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셰인은 사람을 잡아먹은 악마이고, 아널드는 사람을 구한 영웅이니까.
"사후의 인생" 은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요세프는 시력이 너무 좋아 달에 있는 발자국도 볼 수 있다. 에피소드 내에서 이야기를 설명하는 루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요세프는 도시로 떠나고 루는 작은형 결혼식으로 도시에서 우연히 요세프를 만나는데, 요세프는 이미 자신이 죽었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이 커가면서 어떻게 바뀌는지가 중요한 포인트로 보인다. 요세프는 양쪽면에 설치 된 거울의 내부를 볼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미지가 볼 수 있는 가장 과거의 모습이며, 점차적으로 과거에서 현실로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울속의 내가 현실이 되고, 현실의 나는 가상의 존재가 되면서 수동적으로 끌려간다는 이론을 제시하는데 그 순간 죽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내가 가졌던 꿈이 어떠한 이유로 잊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책에서 눈을 떼고 나의 어렸을 때 꿈이 뭐였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어렸을 때는 되고 싶었던 게 많았는데,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 이유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을 잃고 목적없이 아무 생각없이 끌려다니는 순간 거울속의 내가 과거가 아닌 미래가 되고 그것은 현실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요세프는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최소한 한 쌍의 현실이 나란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누군가의 자의와 누군가의 타의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상이고, 누군가에게 현실인 세상. 요세프는 지금 가상의 세상을 사는 셈이었다."
저자의 머리속에서 벌어지는 상상력의 실타래가 펼쳐진 책을 읽다 보면, 언제나 변함없이 어떠한 이상한 점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실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벌어진 틈으로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한 현상들이 펼쳐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 한지, 멍충한 사건들이 벌어지는지는 인터넷 상의 뉴스를 보더라도 금방 알수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사람, 삶의 목적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멍충한 세상을 살아가는 멍충한 사람들이 아닐까.
멍충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영화 "극장전" 에서 김상경이 한 마지막 대사
"이제 생각을 해야겠다. 생각을 더 해야 해.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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