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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유년기의 끝

by leeyj. 2007. 3. 6.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라크


 

 세계 3 SF 작가하면,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을 꼽는다. 사실 그의 작품은 예전에 라마 시리즈부터 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책이 절판이라는 걸 알게 됐을때의 실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시대배경은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냉전시대, 그들은 비밀리에 달과 화성탐사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우주에서 온 거대한 비행선단을 보자 경쟁에서 1,000년이상 뒤쳐졌다는 절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외계 초지성체 인 오버로드가 전 세계 도시에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훗날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인용하게 되는데,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외화시리즈 ‘V’에서 기가 막히게 재현하게 된다. ‘오버로드는 도시상공에 등장한 이후 지구인의 삶에 많은 개입을 하게되는데, 인종차별, 핵무기 개발, 동물학대, 정치적 대립 과 같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당면과제는 인류를 뛰어넘는 초지성체 들의 도움으로 한 순간에 해결된다. 등장이후 한번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오버로드그들이 지구를 방문한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첫 접촉 이후 80년 후 드디어 오버로드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지구인들보다 훨씬 큰 몸을 가지고 있으며, 어깨에 날개가 있고, 머리에 뿔이 있는 상상조차 힘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자신들의 목적은 비밀에 둔 채, 인류가 꿈꿔왔던 유토피아를 실현해 준다. 사람들은 이제 일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하게 됐고, 사회의 모든 공공써비스는 공짜라고 해도 될만큼 가격이 내려가게 되고, 전쟁이나 기아와 같은 어두운 면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증오가 사라진 진정한 유토피아의 실현에 대해서 의심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고, ‘오버로드를 친구로 둔 루퍼트의 처남이다.

 

이 가진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류에게 닥친 지금의 현상은 가히 유토피아라고 할 만하다. 인류 스스로 하려고 한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마치 어린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오버로드에 의해서 유토피아가 건설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이 이룬 게 아닌 타인의 손에 이뤄진 결과, 즉 인류는 너무나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새로운 과학기술을 연구하지 않는다. 우주개발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오버로드의 허락이 없다면 지구외의 어느곳도 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에게 진보인가, 퇴보인가?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오버로드들의 고향, ‘은 바다속으로 들어가서 저명한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오버로드의 우주선에 들어가게 된다. 갖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4개월이지만 광속의 99%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은 상대성 원리에 의해서 지구에서보다 시간이 느리게 가게 된다. 즉 우주선에서의 4개월이 지구에서는 80년이라는 애기. ‘은 드디어 오버로드의 행성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그가 보게 된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때 지구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오버로드는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지구상의 모든 어린이들에 일어나게 되는 이 현상은 꿈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개체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기억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면서 공동체 정신, 초자아를 향해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오버로드가 지구에 오게 된 진정한 목적, 그것은 자신들을 능가하는 오버마인드의 명령에 의해 인류라는 종을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과 대립이라는 원시적인 상태에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초자아로 가게 하려는 것인데,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어른들은 더 이상 가망이 없고 어린아이만이 그와 같은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이 장면을 보면서 아시모프 의 파운데이션이 생각났다. ‘셀던프로젝트갤럭시아의 선택에서, 아시모프는 인간의 개체성이 사라지고 은하계의 모든 지성체가 하나의 초자아로 하나가 된다는 갤럭시아를 선택했다. 그 설명을 납득할 수 없어서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이 났었는데, 클라크 역시 인류의 최종 진화 모습을 단일지성체로 설정하다니 (이건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그대로 베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것이 인류라는 종족의 멸종을 의미한다는 설정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인류에게는 초지성으로 보여지는 오버로드조차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오버마인드의 명령을 들어야 할 정도로 정신능력이 떨어진다는 설정에서 오버마인드에게서 기독교에서의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생각난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우주를 지배하는 신의 존재에게 인류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그것은 마치 우리 인류가 개미 와 같은 벌레를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류의 유년기가 끝나고 새로운 정신의 진화를 이룬 그 순간에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클라크 는 정신적 진화라는 달콤한 선물을 주는 척하고 사실은 전쟁과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류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묵시론적 비전이 의미하는 건 어떤 것일까? 책이 출판된 1953년으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그 동안 인류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유년기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순간 진정 무엇을 해야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P.S.  이 서평은 2004년 2월 26일에 작성했다.  외계 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인류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문명 수준, 육체가 없는 순수정신으로의 진화, 현재의 인류는 유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  존재론적 위협을 가져오는 핵무기와 환경문제는 이런 지적이 옳다는 증거가 아닐까.  SF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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