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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타인의 고통

by leeyj. 2007. 3. 8.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s of Others)  by  수전 손택

 

 

그리 길지 않는 책 두께에 비해 읽는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 ? 재미없어서, 내용이 어려워서, 나의 현재 관심사가 아니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는 인정해야겠다. 수전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시간죽일 때 읽는 가쉽성의 글이나 충격적인 사진을 통해 이슈를 얻으려고 하는 그저그런 대중소설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잊혀져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진심을 가지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꼼꼼하게 정독을 했고, 그 결과로 정신적인 불편함을 겪었지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전쟁의 참혹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다. 그녀는 단순히 전쟁의 공포 만이 아닌 그것을 매개하는 사진의 의미 - 때로는 조작되기도 하고 가공되지 않는 순간의 시점을 담아내는 – 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쟁을 없앨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 사진이야말로 고이 간직해야 할 낭만적인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이 사진작가가 사랑과 죽음이 펼쳐지는 장소를 드나드는 스파이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사진에 찍힐 인물들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방심속에서” 사진작가에게 찍히기를 바랬던 것이다. 제 아무리 사진은 무엇이다, 혹은 사진은 무엇이 될 수 있다, 라고 정교하게 말할지라도, 우리는 재빠른 사진작가가 이제 막 진행되고 있는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을 포착해 놓은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만족감을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누구나 포즈를 취한다. 얼굴근육을 움직이고, 눈은 카메라를 향하고, 손으로 V자를 그리거나 팔짱을 낀다. 그것은 분명 가공된 이미지이다. 한장의 사진을 통해 그 당시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그걸 영원히 간직하려고 한다. 10년이 지난후 그 사진을 보면서 그 당시의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그 사진에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다. 하지만 전쟁을 찍은 사진이라면, 그것도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나라에서의 전쟁을 찍은 사진이라면 어떨까? 전쟁을 치루는 당사자들은 한가하게 연출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순간순간이 죽음의 고통과 맞닿아있다. 그래서 세련되지는 않지만 아무런 기교도 없는 사진들은 우리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가져다준다. 단 한장의 사진으로도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무런 위협의 징후조차 느껴지지 않는 장소에서 편안한 자세로 마치 고통의 극한에 서있는 타인을 지켜본다는 건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감정의 불편함은 사라지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면서 타인의 고통은 잊어버린다. 누구의 전쟁인가? 사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단절, 한정된 프레임은 그 자체로 강렬하지만,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전쟁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성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생히 살아있는 현실이 아닌 미술관에나 전시되는 예술작품이 되버리는 것이다.

 

 

 엄청나게 큰 위를 지닌 현대성은 현실을 씹어 삼켜 엉망진창으로 만든 뒤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내뱉는다는 식으로 볼 경우에는, 현실을 변명할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다. 매우 영향력 있는 어느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각각의 상황은 스펙터클로 변신해야만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스스로 이미지가 되기를, 즉 유명인사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한 재현만이 말이다.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전쟁, 리얼타임으로 전개되는 전쟁을 보면서 극도의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대량복제되는 이미지들, 분절된 이미지가 아닌 몇 시간이고 계속되는 영상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많은 이미지들, 보고나면 곧바로 잊혀진다는 건 너무나 허무하다. 시청률을 올리는 것만이 목표인 사람들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을 느낀다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결국 타인의 고통이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후의 나른함을 즐겁게 해줄 방송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중매체의 등장은 사람들이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렸다. 2차원 평면에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현대사회의 특징인 일회성과 익명성 만을 나타낼 뿐 그 내부에 숨어있는 속성들을 보여주지 못한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뭔가를 배울 능력이 없다면, 용서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인간이 아닌 뭔가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녀가 이 책에서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현대사회의 무감각하고 냉소적인 태도대신, 인간정신의 고귀한 측면인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을 통해 진정으로 교감하길 원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한순간에 스쳐가는 감정의 조각이고, 잊혀진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만은 진정 타인의 고통에 일체감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순간은 한가롭게 TV를 통해 전쟁을 감상하고 있지만 멀지 않는 미래에 바로 나 자신이 TV를 통해 보여질 수 있으니까…



P.S.  이 책은 2004년 5월 28일에 작성했다. 독서모임 발표주제였는데, 화창한 토요일 용산공원에서 먹을거 사들고 가서 즐겁게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독서모임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순간이다. 이 책은 회원 중에서 서울대 다니던 민메이가 추천했는데 당사자는 그날 불참했고,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혹평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재밌다. 토론 끝내고, 숙대역에서 저녁 먹고 근처 노래방에 가서 놀았다. 다들 어찌나 노래를 잘하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처럼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지금은 뭘하며 지낼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책에 대한 것만이 아닌 인간적으로 그렇게 친밀하게 지내는 모임이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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