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ND’S I : Fantasies and Reflections on Self and Soul by Douglas R. Hofstadter and Daniel C. Dennett
마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단지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까?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떠올리면 누구나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혼란스러움을 폭로하고 좀더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준비했다.
인지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데니얼 대닛과 더글라스 호프스태터는 의식과 마음을 다룬 27편의 논문 및 소설을 배열해서 인공지능의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의식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를 명백히 실재하는 것으로 환원시키는게 가능한 것일까. 의식은 어떤 조건만 만족되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기계장치와 같은 것일까. 해명되지 않는 의식의 신비에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보르헤스, 튜링, 도킨스 같은 저명한 사람들의 논문에 대한 비평을 통해 폭 넓은 시야를 접할 수 있게 해준다.
돌고래가 물고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들이 사람과 비슷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분명 정당하지 않다. 만약 침팬지가 해삼처럼 머리가 나쁘다고 가정해도, 필경 얼굴이 사람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에 의식을 가진 생물 집단에 포함될 것이다. 만약 파리가 사람과 같은 크기이고 온혈이라면, 우리는 그 파리의 날개를 뽑았을 때 파리가 아픔(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은 종류의 아픔)을 느낀다는 데 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고찰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하는가?
의식이란 말 자체가 철저한 인간중심적이다. 호모사피엔스가 공유하고 있는 의식만이 진짜라는 근거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동물에게 의식이나 영혼이 있을까. 애완견에게 대하는 태도에선 의식있는 존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존엄성 마저 비치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인형과 같은 무생물에게도 의식을 부여한다. 이 세계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식이 존재하고 인간이 그걸 발견하는 순간 움직이는 자동시계와 같은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범신론으로 통하게 되는데 우리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다. 동물이 죽어갈 때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건 그 자체가 아닌 저항으로 인한 고통의 흐느낌이라는 견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동정심이란 이 세상 모든 대상에 공평하게 적용되어 있는 절대적인 가치인가. 이런 것들은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왜 이 육체에 이 영혼이 머물고 있는 것일까?(또는 왜 보편적 파동함수의 이 가지인가?) 이렇게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왜 이 육체에 <이> 마음이 속해 있는 것인가? 왜 나의 <나임 I-ness>은 어느 다른 육체에 속하지 않는 것일까? <당신의 부모가 만든 육체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라는 식의 답은 순환적이고, 만족스러운 답변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다른 누구가 아닌 내 부모인가? 만약 내가 헝가리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내 부모는 누구였을까? 만약 내가 다른 누구였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였다면? 또는, 혹시 내가 다른 누구가 아닐까? 내가 다른 모든 사람은 아닐까? 단 하나의 보편적 의식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자신의 독립된 개인이라고 느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까? 가장 안정되고 가장 오류가 적다고 판단되는 과학의 중심 부분에서 이러한 기괴한 주제가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조금 기이한 일이다.
현대 과학이론에서 가장 흥미있고 놀라움을 가져다 주는 것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양자역학을 이야기 할 것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움직임. 일반적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동화속 세계. 그 전의 과학과는 달리 양자역학에는 과학자들이 인식이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놀라운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눈이나 측정장치를 통해 전자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순간 그것들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실제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불합리함. 가장 객관적인 과학이 비합리적이며 신비적인 상상력을 허용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이러한 비합리성을 해결하기 위해 평행우주라는 새로운 이론을 전개한다. 우리는 선택에 순간에 각각의 경우로 분기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의 나를 인식하는 건 어떤 것일까. 두개로 갈라진 나 자신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나는 암흑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인지.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진짜라면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분기된 수많은 자아는 다 죽어버린 걸까. 이런 생각은 너무나 혼란스럽다.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계산을 할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심리적 상징 mental symbol 조작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징을 조작하는 일조차 할 수 업다. 그들은 단지 뉴런들을 발화 fire(뉴런이 다른 뉴런에 전기충격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시킬 뿐이다. 그렇지만 정작 뉴런을 발화시킬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물리 법칙이 뉴런을 흥분시키게 만드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을 연구함에 있어서 인공지능주의자 들은 인간을 기계장치로 인식한다. 라디오를 알기 위해서는 라디오를 구성하는 부품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분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에 있어서도 가장 작은 단위인 유전자와 뇌의 뉴런 세포의 움직임을 연구함으로써 의식에 영향을 주는 세포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걸 합해서 인간의 의식을 조립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은 물질적이며 기계적이다. 우린 환원주의의 방법론을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 그런 사고방식은 갈릴레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했을 때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한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비이성적인 태도이다. 환원주의는 목적이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없다. 과학의 발전에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유전자의 발견으로 인간과 동물의 격차는 줄어들었으며 이제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존심인 의식마저 초월적이고 신비한 것이 아닌 물리법칙에 지배되는 평범한 것이라는 것이 밝혀 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간만이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창조성을 가지고 문명을 발전시킬 것이다.
내게 감정과 연관된 질문과 감정과 무관한 질문을 구분하는 경계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겠나? 자네는 위대한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 묻고 싶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해! 그것이 사고인가, 아니면 단지 냉정한 계산에 불과한가? 자네는 미묘한 단어 선택에 대해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그 경우 그 단어가 갖는 함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튜링도 그의 논문에서 그와 비슷한 예를 들고 있지. 아니면 지극히 복잡한 로맨틱한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 그 경우에는 사람의 동기나 그 원인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필요할 거야.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 나는 그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거야.
컴퓨터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의식이 아닌 지능이라면 이미 갖고 있다. 카스트로피와의 대결에서 블루진은 프로그래머가 짠 간단한 법칙만으로 승리를 했다. 한스 모라벡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실리콘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빠른 연산이 가능해지면 그것 자체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 컴퓨터에도 구현된다고 하는 파격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의식과 감정을 어느 하나의 부속물이 아닌 반드시 있어야 할 구성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감정이 없는 의식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컴퓨터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 의식을 가졌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세밀하고 우수한 어떤 구체적 대상이나 현상의 시물레이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한계에서도 여전히 그 원칙이 그처럼 명확할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현실적이고 실제로 기능하는 모든 시뮬레이션은 특정 하드웨어에서 <실현>되기 때문에, 표상의 매체 자체는 이 세계에 어떠한 효과를 낳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건의 표상이 그 사건 자체와 거의 같은 효과를 준다면, 표상은 어디까지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지나친 강변으로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 저자들은 인공지능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결국 인공지능이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그래도 시물레이션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목장을 현실 그대로 시물레이션 한다고 가정해 보자.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모니터에 그대로 재현해 낸다. 목장안에 있는 모든 동물들 역시 그대로 모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물레이션 된 소에서 짜낸 우유를 우리가 마실 수 있는가.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물질적인 것이라면 해답은 명확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실체화 할 수 없는 정신적인 것이라면 어떨까. 가수가 실제로 부른 노래와 시물레이션 된 노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걸 구분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정신적인 대상을 시물레이션 하고 그것이 실제와 차이가 없다는 지적은 타당할 지 모르지만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때에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이야기하는 정신적 요소의 시물레이션은 인공지능의 실제적인 구현과 연관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식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원본이 없는데 무슨 식으로 복제를 한다는 건가. 이러한 주장은 독단적인 냄새가 난다.
중성자별 표면에서는 원자의 경우보다 수천 배나 빨리 원자핵 입자들의 결합과 분리가 일어날 수 있다. 이론상 원자핵 입자의 <화학>은 극미한 자기 복제 구조가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은 지구상의 느린 속도의 생명과 동등한 복잡성을 가지며, 그 초고속의 생애는 눈깜짝하는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가증한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지구에서의 며칠 동안 한 문명의 흥망성쇠가 모두 일어날 수 있다는 놀라운 착상을 준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중성자 별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러한 논의는 너무나 벗어나 있다. 물론 지구와 전혀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 행성을 상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지닌 생명체가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의식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가 무슨 수로 알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의식의 문제를 다루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결코 증명될 수 없는 가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건 SF에서나 다뤄야 할 내용이다. 그러니까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방향을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뇌의 경우 우리는 아직 뇌 속에 쌓인 신념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식의 고차 수준 구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뇌의 주인에게 그 또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묻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이러한 사상이 어디에 어떻게 코드화되어 있는지를 물리적으로 결정할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창발성은 인간의 의식을 설명하는데 넘어야 할 벽이다. 의식이 없는 것에서 의식을 만들어낸다고 했을 때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존재하는 분자가 의식을 만든다면 그것은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배열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배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의 여부인데 그러한 것은 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더 진행되야 알 수 있을거 같다. 의식의 해명을 위해서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그것은 어딘가에 당신과 당신의 친구, 그리고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원자 하나하나까지 동일한 지구와 흡사한 다른 행성이 존재한다는 가정, 또는 우주가 태어난 지 5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리라는 가정(그리고 우주는 아주 오래 된 것처럼 보일 뿐인데, 그 이유는 신이 5일 전에 우주를 만들었을 때 동시에 즉석에서 수많은 <기억>, 즉 그런 기억을 가진 성인, 겉보기에는 고서가 가득 들어찬 것 같은 도서관, 새로운 화석으로 가득 찬 산 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라는)과 흡사한 과정이다.
최첨단의 과학에서 신학적인 요소가 발견된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인간을 신이 만들어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특별한 정신적 능력. 사랑, 미움, 고통, 동정심… 이런 감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런 실체도 없는 정신이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물리력을 부여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언젠가 인간의 감정조차 화학물질로 조정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다. 사랑하는 감정조차 조작할 수 있다면 , 프로그램된 컴퓨터 처럼 모든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면,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목적이 없다면 인간사회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인간은 그러한 시련을 이겨내고 생존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의 뇌세포를 조금씩 IC 칩으로 대체시켜 나간다면, 이들 칩이 각 부분의 입출력 <기능>이 뇌세포의 입출력 기능과 동일해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면,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실제 당신이 하는 말과 모든 면에서 똑같을 것이다. 그말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도 갖지 않게 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 외부 관찰자들이 말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당신에게는 회로에 의해 발생하는 일정한 잡음일 것이다.
나의 생각을 기계가 정확히 구현할 수 있다면 굳이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말을 회로에 의한 잡음이라고 해석한건 지나친 기계론적인 입장이다. 인간에게 이러한 것이 가능하다면 컴퓨터에도 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상태에 이르기 까지의 최초의 상황, 그러니까 의식이 주어지는 순간이 가능할지의 여부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기계들에게 창조주가 될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가 만들어내는 피조물은 어떤 모습일까.
맥도날드 가게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서른여덟 살이 된다는 것은? 오늘 런던에 있다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올림픽에서 체조 금메달 수상자가 되는 것은? 훌륭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키보드로 즉흥 푸가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바흐가 된다는 것은? 이탈리아 협주곡의 최종 악장을 쓰고 있다는 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당신보다 믿을수 없을 만큼 지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능이 뒤진다는 것은? 초콜릿을 (또는 당신이 가장 즐기는 기호품을) 싫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영어를 (또는 당신의 모국어를) 이해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과 반대의 성(性)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당신의 거울상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쇼팽의 형이 된다는 것은(그에게는 형이 없다)어떤 것일까? 현재의 프랑스 왕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꿈꾸던 인물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명종이 울려 깨어났을 때, 꿈꾸던 인물이 되는 것은? 샐린저의 소설 주인공 홀덴 콜필드가 되는 것은? 콜필드의 성격을 나타내는 샐린저의 뇌의 하위 체계가 된다느 것은? 분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분자의 집합체가 되는 것은? 병원균은? 모기는? 개미는? 개미 집단은? 중국은? 합중국은? 디트로이트 시는? 제너럴 모터스 사는? 음악회의 청중은? 야구팀은? 결혼한 부부는? 머리가 둘 달린 소는? 샴 쌍생아는? 분할뇌를 가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의 절반은? 단두대로 절단된 사람의 머리는? 그 몸뚱아리는? 피카소 뇌의 시각 피질은? 쥐의 쾌감 중추는? 해부된 개구리의 반사 운동하는 발은? 꿀벌의 눈은? 피카소눈의 망막 세포는? 피카소의 DNA분자는? 가종 중인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컴퓨터 운영 체제가 되는 것은? <기능 정지> 순간의 운영 체계는? 전신 마취 상태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감전사를 당하는 것은? 더 이상 주체(<나>, 자아,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선(禪)의 대가가 되는 것은? 자갈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풍경은? 인간의 신체는? 지브롤터에 있는 바위산은? 안드로메다 성운은? 신(神)은?
우리는 누군가가 된다는 걸 상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런 상태가 될 수는 없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언하지만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똑 같은 상황에서도 제각각 다르게 느낀다. 사랑, 미움, 고통, 동정심을 개별적으로 측량할 수 있을까. 세계를 인식하는 눈은 뇌의 망막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똑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는데 왜 우리는 사물을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인공지는 주의자들은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 인간의 가장 작은 단위인 유전자를 분석해서 행동의 원인을 소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기계장치라면 그것과 똑같이 시물레이션 해서 컴퓨터에 의식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실체가 확인된 적도 없다. 인간정신을 탐구하는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 난 이 책에 소개된 27편의 논문을 읽으면서 그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사실들을 접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진보를 이루어내는 인간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난 결코 보편적인 가치들로 환원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창조성을 지닌 호모사피엔스의 일원으로써 말이다.
P.S. 이 글은 2004년 11월 16일에 작성한 글이다. 독서모임에서 책을 정하지 않고, 자기가 읽고 싶은 책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평소 관심 있었던 이 책으로 정했다. 2권짜리 책인데 내용은 논문, 소설, 시 의 형식으로 27편이 실려있다. 국내에서는 "이런, 이게 바로 나야!" 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책을 사지는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은거 같다. 책 내용이 좋아서 조만간 구매할 생각이다. 한 번 읽어서는 도저히 내용을 이해 할 수 없고, 몇 번이고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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