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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QUARANTINE

by leeyj. 2007. 3. 11.

QUARANTINE  by  Greg Egan  1992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SF


흔히 SF하면 외계생명체와의 조우, 마법과 같은 믿어지지 않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세계, 그래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마치 환타지와 같은 문학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혀 SF 로 다룰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억지설정을 하기도 한다. 그렉이건 은 그러한 경향과 확실한 선을 긋는것과 동시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놓는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하지만 현재의 과학을 뒷받침하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이론 양자역학  -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책 중간에 포콰이 의 대화부터 책의 내용에서 일탈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책을 다 읽기가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을 통해서 우주론과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영역까지 침투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첨단기술이 가져다 줄 변화된 미래상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은 마치 실제상황처럼 느껴져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드SF 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이 소설의 중간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양자역학 에 대한 설명은 왠만한 SF Mania 조차도 혼란을 겪을 정도로 난해하기 이를데 없다. 하드SF 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렉이건 의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논문이라고 해야 하는게 맞다고 느껴질 정도다.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주의를 기울어야 읽어야 할 부분은 주인공인 포콰이 의 대화인데, 여기서는 양자역학 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QM에서의 관찰자의 역할 에 대한 애기를 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후의 소설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인물들의 심리변화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을 것이다. 간단하게, 양자역학에서의 코펜하겐 해석 을 설명하겠다. 양자역학 에서 어떠한 계에서 입자의 위치는 슈뢰딩거의 파동함수 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파동함수에 의해 찾아진 입자의 위치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관측이라는 행위를 통해 확률적으로 위치가 고정되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말로 설명하면, 입자는 그 계 안에 골고로 다 퍼져있는데 이것을 확산 이라고 한다. 확산 시에는 입자는 어떤 위치든 존재할 수 있지만, 일단 관측이 되면 하나의 실체로써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수축 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코펜하겐 해석 이란 관측되기전의 파동함수는 가능한 모든 상태공간(힐버트 스페이스)확산(propagate) 하며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중 한가지 상태로 수축(collapse)한다 라는 것이다. 그렉 이건 은 이러한 코펜하겐 해석 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관측이 인간의 뇌에서 이루어진다는 대담한 가정을 하게 된다. 대뇌스캔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선별할 수 있으며, 신경뉴런의 재배선까지 가능해진 인간의 뇌는 양자역학의 관측자 역할을 수행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현실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경지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되는 법 배우기


 
주인공인 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는다. 태어날때부터 뇌에 손상을 입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라 라는 환자가 병원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복도에 설치된 수많은 감시카메라를 비롯한 수 많은 감시에서 문 손잡이조차 돌릴 수 없는 백치상태의 환자가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 암호비서 를 비롯한 각종 모드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녀의 위치를 발견하고 사건을 해결하게 되지만, 세계적 연구기관인 앙상블 이 관련된 음모에 가담하게 되면서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데

 

 미래사회는 이미 인간의 뇌를 재설계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른다. 그것은 엄청나게 발달된 나노테크 로 인해 신경망 뉴런의 재배선 이 가능해진 탓이다. 그래서 첨단 과학을 통한 신경모드 칩 만 있으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사랑이나 증오 와 같은 것들을 느끼지 않으며 더 이상 상처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것만 있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차분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인 은 테러집단에 의해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카렌 이 죽었을때도 슬픔이나 증오와 같은 감정을 전혀 못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책상에 앉아서 인생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하면서 과거의 절대로 바뀌지 않을 고정된 행위에 대해서 그 순간에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후회와 번민을 하고, 알수없는 미래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면서 이런 사유와 고민을 통해 지금보다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일까, 이것보다는 나노웨어 가게에서 얼마의 돈을 주고 신경모드 칩을 대뇌스캔을 통해 장착하기만 하면 모든 고민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리적으로 장착된 신경모드 칩에 의해 자율성을 잃어버린 을 더 이상 본인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기계에 의해 조정된 인공지능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런데 앙상블 에서 연구중인 포콰이 를 통해서 얻게 된 고유상태 조작모드수축억제 모드 를 통한 확산수축 을 통해 그는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결코 개변할 수 없고 확고부동한 하나의 현실을 얻기 위해서 그에게 필요했던 건 수백억에 달하는 자신의 버전 들에게서 오직 하나만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은 확산 시 수백억에 달하는 버전 중에서 거의 실현불가능한 극소수의 버전, 그러니까 신경모드 칩 의 지배를 원하지 않는 자율성 의 확보를 원하는 버전 의 자신이었던 것이다. 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다. 신경모드 칩 을 사용하지 않는 그는 너무나 약해서 온갖 종류의 병적인 고민들로 괴로움을 겪어야 하지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은 후에는 더 이상 그런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율성 을 획득한 그의 인생은 행복해질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동안 그의 대뇌를 지배해왔던 기계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써 인간 이 된 것이다.

 

만일 현재의 나의 모습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났을 고유상태 의 무한한 확산 의 결과라면,  그래서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백억에 달할 경우의 수에서 잘못된 것들을 제거하고 각각의 버전 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실현가능할 현실로 수축해서 일어난 것이라면 과연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의 귀속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게 맞는건지 난 진정 모르겠다. 어쩌면 인생이란 영원히 산다고 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 아닐까.



P.S.  이 글은 2004년 3월 15일에 작성했다. 하드SF 소설인데, 양자역학의 수축현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작가 자신이 엄밀한 과학적 기반위에서 글을 쓰는걸 선호하는 거 같다. 그렉이건은 이후로 계속 하드SF 장르의 소설을 써왔는데 우리나라에는 이작품 외에는 번역된 것이 없어서 상당히 아쉬운데, 이럴땐 영어실력이 없는게 안타깝다. 올해는 꼭 제대로 영어 공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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