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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은하영웅전설 (2014.07.28)

by leeyj. 2014. 7. 28.

 

 

일본에서 1982년에 출간되고, 우리나라에는 1991년에 처음 소개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대학교 때 알게되서 전권을 다 사고 외전까지 14권을 다 읽은 기억이 난다. 책에서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전쟁은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 전쟁을 이끄는 라인하르트와 얀 웬리의 대결은 인물에 대한 매력과 함께 몰입하게 한다. 이 책은 서문에서 지구 에서 은하계로 퍼져가는 인류와 은하제국의 역사를 기술한다. 첫번째 은하제국이 서기 2,800년에 루돌프 골덴바움에 의해 세워지며, 인간의 오만에 의한 실패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은 전쟁보다는 정치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저자는 민주주의 라는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하다. 그것은 자유행성동맹의 불패의 명성을 지닌 얀 웬리의 생각에 의해 드러난다. "자신은 안전한 자리에 있으면서 정치적 욕심에 의해 수백만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내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지도자들은 없어져야 할 존재" 라고 그의 양자인 율리안, 부관 프레데리커, 그 밖의 측근들에게 자주 말하곤 한다. 얀의 이러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혐오는 책 전반에 너무나 자주 나온다.

 

그에 비해 그의 라이벌인 라인하르트는 20살의 어린 나이에 제국의 원수가 되고, 그의 친구인 키르히아이스와 같이 거침없이 500년 묶은 제국의 부패와 싸워 나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때로는 비열한 술수를 쓰기도 하며,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라인하르트는 광채가 날 만큼 잘생긴 얼굴을 가졌고, 전쟁의 신이라 불릴만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완벽한 인간으로 나온다.

 

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등장인물들은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기지 않는다. 제국 쪽을 보면 라인하르트 20세, 키르히아이스 21세, 미터마이어 28세, 로이엔탈 29세, 힐더 19세 (제국 국무총리 마린돌프의 딸이며 훗날 황제의 비가 되는 인물) 동맹 쪽을 보면 얀 웬리 29세, 율리안 17세 (얀 웬리의 양자), 프레데리커 23세(얀웬리의 부관이며 훗날 아내가 되는 인물) 책에 나오는 장군들도 나이가 많아야 30세 중반 이다. 주요 등장인물 중 40세 이상은 뷰코크 장군과 메르카츠 장군 2사람 밖에 없다. 등장인물 나이가 왜 이렇게 젊은걸까? 그 이유는 제국, 동맹 두 나라가 이미 쇠락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사회 전반이 무기력 증에 빠진 현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40세 이상의 사람은 사회를 개혁할 만한 의지가 없다고 보는 듯 하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기존 사회에 물들지 않아 활력이 넘치고 창의적 이라는 건 맞겠지만, 그에 비례해 제도를 만든다든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군대에서 입지를 굳히기는 어렵지 않을까.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대학교 들어갈 때이니 19살, 대학교 신입생이 은하제국의 원수 자리에 오르고, 불과 3년만에 황제가 된다는 거 아닌가. 일반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려면 라인하르트, 얀 웬리는 일반 사람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재, 전설적인 영웅 이여야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 두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라인하르트는 일반 사람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초인으로, 얀 웬리는 놀라운 재주와 달리 겉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인상과 주변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화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한다. 

 

이 책은 라인하르트와 얀 웬리의 두뇌 싸움과 제국과 동맹이라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마치 현실처럼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여러 측면으로 묘사한다. 6권에서 두 사람은 패밀리언에서 생사를 건 전투를 시작한다. 소설의 절정 부분이기도 한 이 전투에서 두 사람의 싸움은 동맹국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어이없는 결과로 끝난다. 그리고 이 부분 이후는 참 읽기가 어렵다. 20년 전 처음 읽었을 때도 소설 후반부에 너무나 매력적인 한 인물의 어이없는 죽음이 나와 읽은 후에 후유증이 많았다. 패밀리언 전투 이후는 제국군이 동맹을 점령하고, 근거지를 읽은 동맹의 민주주의가 얀 웬리 라는 한 인물의 명성에 의해 유지되어 국지적인 전투를 벌이는 부분과 인류의 고향인 지구를 다시 은하계의 중심으로 돌이키려고 하는 지구교도들의 음모가 주요 내용으로 나온다.

 

민주주의와 전제주의의 대결이라는 주제로 본다면, 책에서는 명백히 전제주의의 승리이다. 부패한 골덴바움 왕조를 대신하여 23살의 라인하르트의 로엠그람 왕조는 전 시대의 부패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특권의식에 빠진 귀족들을 전쟁을 통해 모조리 제거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유한 막대한 재산을 국민들에게 공평히 분배한다. 평민 출신을 정부의 요직에 기용한다. 신분이 아닌 철저히 능력에 의해 맡은 일을 수행한다. 그것은 능력으로나 도덕 으로나 결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지도자, 게다가 그는 젊고 광채가 날 만큼 너무나 잘 생긴 절대왕정의 군주다. 이만하면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의 완벽한 재현 아닌가.

 

결점을 찾을 수 없는 라인하르트의 전제정치에 대항하는 얀 웬리의 논리는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이유로 들지만 빈약하기만 하다. 소설 에서 저자는 라인하르트 보다는 얀 웬리 에게 더 애정이 있는 듯 하다. 민주주의 제도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봐도 그에게 기울여 질수 밖에 없다. 소설의 클라이막스 라고 할 수 있는 패밀리언 전투 이후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의 만남에서 라인하르트는 국민들이 뽑은 어리석은 지도자에 의해 무너지는 동맹을 조롱한다. 얀 웬리는 그런 의견에 씁쓸하게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전제주의 보다 우월한 정치체계 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국민을 해칠 수 있는 권리는 국민 자신 이외엔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형편없는 인물인 트류니히트가 권좌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국민들 자신의 책임 입니다. 타인을 책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제정치에서는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가져온 것이 아니므로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전제군주의 죄는 그만큼 배가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저자가 당시 일본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된다. 잘못된 지도자를 뽑은 어리석은 국민들. 지금은 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길 바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나의 생각은 다르다. 얀 웬리의 "국민을 해칠 수 있는 권리는 국민 자신 이외엔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가. 왜 스스로를 해치는(하루 일당도 못 벌어서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행위) 어리석은 일부의 사람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하나. 왜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 더 나아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선거에 그토록 무관심한가.

 

저자는 국민의 자발적 의지로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이상적인 정치체계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솔직히 회의적 이다. 근거는 지금 국민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SNS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게 아닐까, 불과 2년 전만 해도 SNS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다.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 에게 시간이 지날 수록 현실은 더욱 가혹하기만 하다.

 

이런 관점에서 소설을 읽다 보니, 후반으로 갈 수록 마음이 아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현실은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 같은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은 소설로만 생각하고, 영웅들의 활약을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잡 생각이 많이 나는지, 소설속 상황과 너무나 닮은 현실의 답답함으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