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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칠리리딩) 동백꽃 - 김유정 단편집 (2014.10.18)

by leeyj. 2014. 10. 18.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웠던 김유정이 소설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새롭기도 하고,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김유정과 동시대 문학 연구" 라는 김유정 소설 논문집을 보니 하나의 소설을 이렇게 방대한 자료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나기" 는 당시 농촌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2원을 구해오라고 어린 아내를 구박한다. 아내는 돈을 준다는 이주사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돈을 구할수 있으니 때리지 말라고 사정하고, 남자는 아내의 몸단장을 해주고 돈을 받아오라고 내보낸다. 집안이 어려워서 먹고 살기 힘든데도 남자는 힘든일을 하기 싫어하고 어린 아내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윽박지르고, 여자는 매음을 통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하는 걸 보면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1930년대는 일제 치하였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거리가 없으니, 이런 일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금따는 콩밭" 은 친구의 꼬임에 넘어나 자신의 콩밭을 엎어서 금을 깨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근처에 광산이 있는데, 콩밭에 금맥이 있다는 말이 안되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영식의 모습이 어리석기도 하고, 흙 속에 금줄이 있다고 영식을 기만하는 수재의 행동이 가증스럽다. 열심히 일하는 친구를 속여서 그가 얻는게 뭘까. 수재는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도망친다.

 

김유정의 소설에는 거짓말 하고 도망치는 인간들이 많이 등장한다. 몸이 아픈 남편을 위해 총각과 가짜로 결혼하는 "산골 나그네" 의 여자도 그런 유형의 인간이다. 장가 못간 아들 때문에 마음이 아픈 주인 에게 나그네가 찿아온다. 며느리 욕심이 있는 주인은 나그네를 아들과 결혼시키는데, 나그네는 결혼 첫날 옷을 훔쳐 달아난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동기나 행동이 너무나 악랄하다 느낄 것 같다. 읽으면서도 화가 난다. 나그네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봐도 인간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옷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결혼을 하다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건 아닌지.

 

김유정의 소설을 보면 매매혼, 데릴사위 같은 주제가 많이 나온다. "봄봄" 에서는 어린 딸과 결혼을 시켜주겠다며 멀쩡한 남자를 몇 년이나 돈도 주지 않고 부려 먹는 악독한 장인의 나온다. 이 남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딸의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다. 주인공이 일을 하지 않자, 가을에 추수하고 결혼시켜 준다고 달랜다.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는 건 요즘으로 보면 사기죄에 해당된다. 소설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해학적으로 그려지지만, 실상을 보면 딸을 미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주인공은 순진하게 계속 속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세상은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당하는 사람 2부류로 나눠진다. 김유정 소설에서는 나쁜 사람이 벌을 받지도 않는다. 사람을 속여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피해자는 항의도 하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사기꾼이 도망가면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그러니 읽고 나면 개운하지가 않다. 살기 어렵다고 친구를 배신하고, 자신을 도와준 은인의 뒷통수를 치는게 정당할까. 소설이라고 하지만 윤리의식 없는 인간들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