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de and Prejudice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은 1796년 집필한 첫인상 을 개작해서 1813년에 발표한 그녀의 2번째 소설이다. 집필과 발표사이의 공백이 이렇게 긴 이유는 그녀의 소설을 받아주는 출판사가 아무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출판시에도 제목을 개작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오만과 편견 보다는 집필시의 제목인 첫인상 이 오히려 더 내용에 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베닝가 둘째딸 엘리자베스의 진실한 사랑 찾기 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베닝가 의 5명의 딸들 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이고 분별력 있는 엘리자베스, 그녀는 무도회장에서 장래 형부가 될 빙글리 의 절친한 친구 다시 를 만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존심이 강한 그의 태도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반면에 위컴 이라는 남자는 다정다감하고 사교적이며 재미있는 그의 이야기들은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받게 되고, 엘리자베스 또한 그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오스틴이 살았던 당시 사회는 지극히 보수적이었으며, 여자는 얌전하고 교양있게 자라야 하며 나이가 차면 좋은 남자를 골라서 시집을 가는게 인생의 목적이고 남자는 잘생기고 돈많고 사교적이어야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시대였다. 이런 당대의 가치에서 다시 가 사람들의 호감을 받지 못했던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시의 가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인 베닛부인 의 인생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딸들을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낼까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딸들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돈을 받기 위해 거래하는 물건과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만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그녀에게 절대의 추구 나 무한에의 동경 같은 건 아예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제인 오스틴의 세계에서는 돈 때문에 결혼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돈 없이 결혼하는 것은 더욱더 어리석은 일인 것이다.
오스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철저한 인물중심이라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다시, 링글리, 위컴, 제인 같은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철저한 심리분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상의 표현기법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고전으로 평가될 만큼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당대에는 그리 적합한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보다 한세대 뒤진 샬롯 브론테 는 제인에어 를 출판한 후 어떤 비평가의 소개로 오만과 편견을 읽고 난 후의 독후감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당신이 쓴 글을 읽어볼 때까지는 오만과 편견을 읽은 일도 없었으며, 즉시 입수해 왔습니다만, 거기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흔해빠진 얼굴들, 정확한 寫眞版 (사진판)에 찍어낸 肖像 (초상)뿐! 주도 면밀하게 울짱을 둘러치고 손질이 잘 된 정원에는 울타리가 둘린 깔끔한 화단이 있고 화사한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러나 밝은 사물의 모습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드넓게 퍼져나간 밭도, 상쾌한 바람도, 푸른 산도, 아름다운 시내도 없습니다. 그녀가 그리는 신사 숙녀를 상대로 하여 그 優雅 (우아)하면서도 냄새가 나는 듯한 집 안에서 그녀와 함께 사는 건 나는 싫습니다…오스틴氏는 觀察力 (관찰력)이 뛰어날 따름입니다… 時가 없는 대예술가 따위가 있을 수 있을까요? 19세기 초의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샬롯 이 보기에는 아무런 갈등구조도 없고, 판에 박은듯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당대 사회에 대해서 체제순응적이라는 것이다. 오직 물질적인 가치밖에 모르는 베닛부인 에서부터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여성으로 나오는 엘리자베스 에 이르기까지 소설속의 모든 여성들은 훌룡한 남자들과의 결혼을 꿈꾼다. 마치 세상에는 이것말고는 달리 존재하는게 없다는 식이다. 엘리자베스 의 경우를 보면 그녀 역시 남자를 보는 눈이 다른 사람과 다를게 없다. 그래서 다시 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비사교적이고 자존심 강한 태도를 보고 인품이 나쁜 남자로 편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언제나 그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캐서린 영부인이 찾아왔을 때 간접적으로 자시의 마음을 밝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수동적인 여성상에 갖혀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와 다시 는 신분상의 차이가 있는데, 이런 계급상의 차이는 이 두 사람의 사랑에 아무런 장애도 가져오지 않으며,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한다. 19세기 초는 프랑스 혁명, 공포정치, 나폴레옹 전쟁,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상의 큰 변혁이 일어나서 근대라고 하는 과거와는 다른 개성을 중시하고 합리적인 사회로 가고 있지만, 그녀의 소설 속 배경은 여전히 봉건적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소설에서 이런 구시대적 가치관을 신봉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여기에 대해서는 가장 이성적인 엘리자베스 조차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관심사는 다시 를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까 하는 자신의 감정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들자면, 소설속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이 우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와 다시 가 만나는 장면들을 보면, 전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설정을 하다가 갑자기 마주치는 식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기법을 쓰고 있다. 이것은 오스틴 자신의 작풍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는 집에 놀러오는 조카들에게 즉석으로 애기를 지어냈고 이걸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이야기의 논리적 전개보다는 머리에서 떠오르는 직감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1815년 편지에서 “……나는 감히 여류 작가가 되려고 마음 먹은 여성 중에서 제일 無學無知 (무학무지)한 사람이겠지요.”
오스틴은 훗날 오만과 편견에 대한 반성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좀 지나치게 가볍고 지나치게 밝고 지나치게 빛납니다. 陰影 (음양)이 모자랍니다. 사실 맨스필드 파크 에서는 宗敎 (종교)나 聖職 (성직)을 다루는 태도가, 다른 두 작품이 야유적인 것과 대조적으로 지극히 眞摯 (진지)하다”
이런 소설상의 문제점들을 오스틴 자신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난 아직 그녀의 작품 중 최고로 평가되는 맨스필드 파크 를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해서 평가할 수 없지만, 아니 나 자신이 그런 평가를 할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소설에서 사회적 문제보다는 인간이라면 공통으로 지녀야 하는 보편적인 감정들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것 같다. 남녀의 연애는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녀의 소설이 시대를 뛰어넘어 고전으로 평가받고 현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P.S. 이 글은 2004년 3월 25일에 작성했다. 독서모임 토론도서로 선정돼서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독서모임에서도 오스틴에 대해서 찬반이 갈렸는데,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모습과 그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렸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 안나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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