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랑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왠지 허전해졌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타나베’는 결국 ‘미도리’를 선택했다. 그건 ‘와타나베’를 괴롭혀왔던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함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나오코’가 절실히 원했던 소망은 결국 이뤄지지 못한다. 인간이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었더라도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차츰 기억이 희미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실제로 그런일이 있었는지,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망각이 없다면 과거의 슬픈 기억들로 인해 미쳐버리거나 언제나 우울한 상태로 살아야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망각은 사람이 삶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때때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렸을때 지옥이라는 걸 알고나서 너무나 무서워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그 정도의 공포심은 느끼지 않는다. 그건 ‘죽음’이라는 게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나 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견딜 수 없는 절망감이나 고통을 느껴본적은 없으니까, 너무나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하쓰미’ 와 ‘나오코’의 자살을 보면서 문득 ‘하루키’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궁금해졌다. 도대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분신이 죽었다는 이유로 정신이 이상해지고 나중에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걸까? 내가 보기에 ‘하루키’는 세상과 사랑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다. 그는 세상은 너무나 썩었고 더러운 시궁창 같은 곳이고, 그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소설은 정말 훌룡하다. 내가 책을 이렇게 빨리, 굉장한 집중력을 가지고 읽은게 드물 정도로 굉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인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 ‘레이코’ ‘나가사와’ ‘하쓰미’ 모두들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들이다. 다만 그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허무주의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 할 수 없다.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쓰미’ 와 ‘나오코’의 자살 장면에서 왠지 현실도피라는 생각이 들었고, 죽음을 미화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으니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일까? 그렇게 자살하면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이기적이고 잔인한 행동이다.
“정상적인 세계와 비정상적인 세계”
도대체 어떤게 정상적인 걸까?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인데, 우리 모두는 조금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걸 억누르고 참고 있는 것 뿐이다. 때때로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애기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미쳐가는 걸까? ‘나오코’ 와 ‘레이코’는 과거의 악몽과 같은 사건 때문에 환청이 들리고 환영이 보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된다. 그들은 그런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수가 없다. 그런 ‘나오코’를 구원하기 위해 ‘와타나베’는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있다. ‘나오코’ 와 ‘와타나베’는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나오코’가 세상과는 동떨어지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면, ‘와타나베’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미도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와타나베’가 어떻게 ‘나오코’를 완전히 이해해주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오코’의 불완전하고 너무나 약한 신경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건 그녀에게는 행복한 앤딩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녀을 아끼고 사랑해 온 ‘와타나베’ 와 ‘레이코’ 같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슬픔을 가져다 주었겠지만 말이다.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라도 결국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죽음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그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준건 ‘미도리’ 의 존재였다. 마지막 페이지에서의 ‘와타나베’의 고백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건 앞으로의 삶을 살아야 할 희망의 메시지 였던 것이다.
‘와타나베’는 20살의 나이에 그 나이 또래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인생이란 그런게 아닐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이다.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정을 거치지 못한 사람은 언제까지라도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그동안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나 사랑의 상처 같은 건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타인의 삶 같은 건 관심도 없었고, 오직 나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와타나베’ 가 ‘나오코’를 사랑하는 것처럼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더 많으니까…
공 통 문 항
1. 상실의 시대를 다른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유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너무나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직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삶이란 정말 공허한 것이다. 완벽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게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3~5문장까지 가능합니다.^^)
“나를 언제까지라도 잊지 말아 줘요. 내가 존재했다는 걸 기억해 줘요.”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예요. 자로 깊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서 은행 예금처럼 빡빡하게 살아나갈 순 없어요.” (와타나베의 편지에 대한 레이코의 답장)
3.[상실의 시대]제목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보신다면요?
(나름대로의 뜻풀이를 해주시면 됩니다.)
“완벽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 치뤄야 할 삶의 대가…”
4.무라카미하루키의 다른 책을 읽어보신적이 있으세요? 있으시다면 제목은? 간단한 느낌도 적어주세요.
“태엽 감는 새” –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5.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몇가지 적어주셔도 됩니다.)
“우리들은 확실히 자신의 비뚤어짐에 잘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비뚤어짐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자기 속에 자리잡게 할 수 없어서, 또 그러한 것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바깥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뚤어짐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거든요.” (나오코 의 편지)
6.동의할수 없었던 부분은?(몇가지적어주셔도 됩니다.)
‘하쓰미’ 와 ‘나오꼬’가 자살하는 부분 – 사랑하는 사람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지독한 개인주의…
7.맨끝장을 덮고 났을때 바로 들었던 생각은?
인생을 살면서 아무리 힘들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 온다해도 결국은 살아가야 한다는 것.
8.[상실의 시대]는 당신에게 어떤 책이었습니까?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어떤건지 느끼게 해주었다. 오랫동안 아무 감정없이 타인에게 대했던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나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실패나 상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인생은 용기있는 자의 것이니까…
9.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신다면?
(동시대성과 함께 읽어주셔도 되고, 다른작가나 작품과 비교해주셔되구요, 아니면 그냥 자유스럽게 적어주셔도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냉소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이 실현되지 않아서 세상과 타협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다는 설정은 지독한 개인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현실적이라서 애착이 가고, 왠지 그들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 작가는 아니지만 그와 상대가 될만한 사람이라면 ‘스즈키 코지’ ‘베르나르 베르베르’ 정도가 아닐까, 작품스타일은 다르지만 소재의 독창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당대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무라카미하루키의 책중 가장 읽고싶은 책이 있다면?
(세권까지까지 가능합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
11.자유롭게 의견개진해주세요.
(상실에 대한 모든이야기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아쉬워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정말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는데, 언제나 같이 다니고 내가 우울해하거나 기분이 나쁠 때 내 앞에서 개그맨 흉내를 내면서 내 기분을 풀어주던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집도 이사가고, 그 친구에 대한 안좋은 소문이 나면서 좀 멀리했었는데, 그땐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사실 그런건 아무것도 아닌데… 그 후로 그친구를 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한 번 만나게 되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밤새도록 대화하고 싶다.
P.S. 2003.9.6 일에 작성한 글이다. 이 책은 잊을수가 없는데, 독서모임 첫번째 토론도서 이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책은 "태엽 감는 새"를 읽은적이 있었는데, 미스테리 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었고,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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