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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모래의 여자

by leeyj. 2007. 2. 28.

모래의 여자 (The Woman in the Dunes)



단 하나의 세계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어떤 불안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계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 역시 내면에 한점의 의혹도 없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그런 단순함은 이곳과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나서이다.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가 만들어 낸 함정에 빠져서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 또 다른 세상을 동경하게 된다. ‘모래의 여자’ 에서의 남자 역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다. 개성이 사라지고 조직속에서 하나의 부속품, 소모품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전혀 다른 세상속으로 떠나고 싶다는 절실한 소망을 이해할 것이다. 남자는 모래에 집착한다. 모래가 지니고 있는 유동성,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으며 부속품이 되지 않는 속성. 그것은 인간 사회가 지금처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면서 힘들어진게 한 곳에 정착하려고 하는 욕구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의 생각과도 부합된다. ‘모래의 여자’는 하나의 사물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 본성일수도 있으며, 막연한 동경이 잔인하게 허물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뭘 꾸물꾸물 망설이고 있는 거야! ......잘 들어, 나만 문제가 아니야. 당신도, 마찬가지 피해자가 아니냐고! 그렇잖아, 당신은 이곳 생활이 바깥에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했어...... 이게 부당한 생활이라는 것을 당신 자신이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노예 취급을 받으면서 그렇게 대변자 같은 얼굴 하지 말라고! ......아무도 당신을 여기에 가두어놓을 권리는 없어! ......그러니까, 빨리 불러! 여기서 나가자고! ......아하, 알겠군...... 겁이 나는 모양이지, 어? ...... 멍청하기는! ......겁낼 일이 뭐가 있어! ......내가 있잖아...... 신문사에 다니는 친구도 있단 말이야...... 사회 문제로 삼는 거야...... 왜 그러고 있어?......왜 아무 말이 없냐고? ......그렇게 쭈뼛거리지 말라잖아!」

남자는 그동안 살아왔던 세상이 너무나 편한 곳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미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어 버린 그에게 모래로 이루어진 세상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한게 아니라 일상의 답답함과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서 몇 일 여행을 간 거에 불과한 것이다. 그동안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급작스런 변화에 가장 놀란건 남자 자신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인가, 하지만 이런 남자의 모습에 혐오감이 들기 보다는 동정심이 드는건 나 역시 나약한 현대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자유를 속박당하는 현재의 모습. 한달에 한번 나오는 월급과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 영화를 보는데서 만족을 느끼는 단순함. 하지만 이런 생활이 깨지면 안정을 찾지 못하고 다시 나의자유를 저당잡히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찾아 다닌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청년의 마음도 이해가 가잖아. 농부란 것은, 일해서 땅을 늘리면 일거리가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 결국 고생에 끝이 없고, 그런 나머지 얻어지는 것은 더욱 고생이 늘어날 것이란 가능성뿐이야...... 하기야 농부는 쌀이니 감자니 하는 수확이 있으니 그만큼 낫다고 해야 하나? 그에 비하면 이 모래 퍼내기 작업은, 마치 삼도천 강가에다 돌 쌓기나 다름없잖아!」

「삼도천 얘기, 끝에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고 뭐고가 어딨어...... 어떻게든 되지 않으니까 지옥의 벌이라고 하는 거지!」

「그래서 그 가문을 이을 청년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어떻게라니? 그야 미리부터 계획적으로 한 일이었으니 일자리 정도는 진작부터 알아보았겠지」

「그래서요......?」

「그러니까, 거기에 다니겠지......」

「그래서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 월급날이 되면 월급을 받았을 테고, 일요일에는 옷을 갈아입고 영화나 보러 가고 그랬겠지」

「그러고는요?」

「그런 거 직접 본인한테 물어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겠어!」

「역시 돈을 모아서 라디오를 샀을까요?」

문명화가 될수록 개인의 개성은 사라져간다. 미디어는 모든 사람들을 평준화 시키고, 어느새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잊어버리고 조그만 기쁨에 안주해 버린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기계 부속품이 되고 마는 현대인의 운명에 슬퍼졌다. 뫼비우스의 띠는 어느 순간 안과 밖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동경해 왔던 세상이 내가 살고 있는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아베코보는 자신의 소설속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차피 똑같은 결론이라면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을 포기해야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 사람과 치열한 고민을 한 사람이 느끼는 삶의 의미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소중함과 자신의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목적의식은 행동양식을 바꾼다. 생명이 없는 기계부속품에서 기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영혼을 가진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의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수동적이었던 삶의 태도에서 벗어난 지금, 더 이상 물질적 의미에서의 공간은 무의미하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삶의 공허함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다른 누구도 갖지 못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든 말이다.


PS. 이 글은 2005.2.26일에 작성한 글이다. 그 당시 웹에서 알게 된 친구들하고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매달 한권씩 책을 정해서 대학로에 있는 '민들레 영토' 에 모여서 서평 발표하고 토론한 기억이 난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책에 대한 취향도 다양해서 많은 지식과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던 소중한 기억이다. 지금은 서로간에 어떻게 지내는지도 잘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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