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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과학 '대가설' (Emerging New Scientific Theories)

by leeyj. 2007. 2. 28.

과학 ‘대가설’ (Emerging New Scientific Theories)


 

 


 
 
일본의 야자와 사이언스 오피스 에서 펴내고 있는 최신 과학론 시리즈의 내용을 번역해서 나온 과학 교양서이다.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의 기분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 만큼의 기쁨을 느꼈는데, 현재 가장 중요한 과학의 현안에 대해서 인터뷰와 해설 기사를 통해서 상세하게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과학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만 마음속에서 지울 수 있다면,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과학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으며, 토픽 제목을 보고 흥미있는 부분부터 읽을 수 있으며,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 부분은 읽지 말고 다음으로 건너뛰어도 상관 없다. 각각의 토픽들은 연결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우선은 인터뷰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DNA의 사나이프랜시스 크릭의 두가지 비밀

 

프랜시스 크릭 은 DNA의 사나이로 불린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는 DNA
이중나선의 발견자이다. 그 당시 생물학은 그리 인기가 없었다. 물리학자가 더 대접받던 시기에
,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위해 위험한 길을 택하고, 그의 인생에서 2가지 비밀 중 하나인 생명의 비밀을 밝히게 된다. 다윈의 진화론을 통한 자연선택은 인간이라는 종의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밝혀주었고, 멘델의 유전법칙은 자식이 부모를 닮는 보편적인 현상을 통해 생명이 어떤식으로 자손으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매커니즘을 밝혀냈다. 그리고 1953 DNA 이중나선의 발견으로 시작된 분자생물학은 생명이 어떤식으로 복제되는지와 단백질을 통한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주었다. 물론, 그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직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완성된 형태의 대답을 제시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가장 중요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가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DNA 월드 이전의 RNA 월드, 그것은 어떤 것일까. 처음에 아미노산과 같은 무기 분자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당분간은 거기에 대한 실마리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생명 발생에 관련되는 증거가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이고, 이 문제에 착수하고 있는 연구자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을 밝힌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과학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순수한 것 같지만, 연구비 지원 같은 외부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없다면 굳이 그걸 연구하기 위해 돈을 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언젠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천재적인 영감을 지닌 과학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문제는 당분간 묻어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 프랜시스 크릭의 두번째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것은 현재 가장 최첨단에 있으며, 동시에 난해하다고 알려진 의식에 대한 것이다. 크릭은 생명의 비밀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생명력이 없는 분자인 DNA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진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 역시 뇌의 수많은 신경뉴런세포로 환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는 반대로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에는 신경뉴런세포의 조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의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환원주의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쏟아낸다. 그러한 시도가 자유의지 라는 인간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단순한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기계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크릭은 그러한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그것은 과학을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보다 하위의 단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물의 구성요소를 해석하고, 그들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고, 어떻게 하여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매우 뛰어난 수법이라는 것이다.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언제나, 의식에는 비물리적인 특성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 의식을 연구하는 선구적인 과학자들이라면, 로저 펜로즈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의식의 문제에 양자중력을 적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수학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자켄도프는 우리는 자신의 사고를 의식하는 일은 없고, 사고의 결과 예컨대, 회화나 시각영상 등 를 인식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크릭은 뇌의 신경뉴런세포들의 움직임을 통해 어떤 세포들이 의식에 관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화학물질을 통해 인간의 의식에 관여할 수 있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뇌에서 의식을 만들어내는 신경뉴런세포를 파악하고, 신경뉴런세포를 만들어내는 단백질, 그런 단백질을 형성하는 유전자를 파악함으로써 뇌에서의 의식의 비밀을 밝혀내겠다는 그의 논의는 재미있다. 비록 그의 논의가 SF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은 알코올에 의한 지배를 받을 때가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인간의 뇌에 대한 뉴런세포들의 조합과정을 실험상으로 재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은 원숭이의 뇌로 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결과를 내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크릭은 전세계의 신경과학자들에게 의식에 대한 연구에 뛰어들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사회라면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사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의 제왕 한스 모라벡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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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능 로봇에서 인류의 가상 멸종에의 시나리오

 

 인간의 의식이 결국은 기존의 물리지식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신경뉴런세포로 환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 한스 모라벡이 제시하는 로봇에 의한 미래세계에 대한 비전을 들어보자. 그는 1988년에 <마인드 칠드런> 이라는 자극적인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의식을 지닌 로봇의 출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7년 이내에 집안일을 도울 가사로봇이 등장하고, 전세계적으로 로봇혁명을 가져오게 된다고 예측한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2010년까지 도마뱀 지능을 갖춘 제1세대 만능 로봇이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움직임이 그다지 유연하지는 않지만, 공간능력은 대단히 우수하고 운동능력도 상당히 높은, 그래서 거대한 로봇 산업을 창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이 되면 제2세대의 만능로봇이 등장하게  되고, 1세대보다 유연성이 등장하게 되고 좀 더 다양한 동작이 가능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생물에게 일어난 행동주의적 다윈 진화를 로봇에게 적용하게 되는데, 로봇은 다양한 상황을 맞아서 좀 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을 정하고, 그 후로는 단번에 그런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2030년 제3세대 만능로봇이 등장하게 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expert 시스템을 개개의 로봇에 저장하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스스로가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그것은 의식은 완전히 자연의 산물이고, 비교적 단순한 프로그래밍만으로 로봇은 시뮬레이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언어화되며, 거기에 완전히 자동적으로 의식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서 설계가 됐으며, 따라서 그들의 일반화 능력은 취약하다. 2040년 제 4세대 만능로봇이 등장하게 되면, 일반예측 능력을 결합시키고, 세계에 대한 정보를 예측하게 된다. 그것은 expert 시스템의 궁극적인 완성이고,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도움은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예측 시스템 내부의 추상세계를 향하여 물질세계의 일을 이야기하거나 번역하는 데에만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제 생물의 신경세포뉴런은 40년동안 기계론적 다윈의 진화 과정을 거친 로봇의 능력을 따라잡을수 없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의식을 지닌 로봇을 통제한다는 게 가능한 것일까. 그걸 위해서 인간은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제1원칙을 프로그램밍 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지식을 갖추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예측할 수 있는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인간은 푸들과 같은 존재로 전락할수도 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 2060년이 되면, 우리 종(인류)과 로봇의 자손을 위한 헤겔적 종말 이 닥칠수도 있다. 19세기 전반의 독일 철학자 헤겔은 순수하게 추상적인 의식이 절대 자기 인식 이 될 때, 요컨대, 정신이 물질에서 떠나있어서 순수정신으로서 그들이 융합할 때, 역사는 종말을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 전의 모든 일들은 로봇이 담당하게 된다. 그러다 로봇들은 인간의 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목적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해방된 로봇들은 이제 물질적인 육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인식 가능한 물질적인 형태를 버리고, 또 어떠한 기계적인 자아도 갖지 않고, 거기에 남는 것은 오직 순수하게 인공적인 정신뿐이다. 그것은 절대 정보 이며, 기계 밖의 유령 이다.

 

 한스 모라벡의 로봇에 의한 미래세계는 너무나 파젹적이어서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결국 60년 안에 인간은 로봇의 지배를 받게 되고, 호모사피엔스 라는 종은 생물의 역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멸종하고 사상 최초로 인공으로 만들어진 실리콘 생명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충격적인 결말. 그의 논의는 의식을 신경세포뉴런으로 환원할 수 있고, 컴퓨터 처리속도가 무어의 법칙에 의해 뇌의 처리용량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에 의문이 든다. 그리고 2060년에 로봇이 스스로 물질을 벗어나 순수정신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그런것들이 과연 가능할까? 단순히 컴퓨터 처리용량이 증가한다고, 로봇안에 자연스럽게 의식이 생겨날수 있을까. 그는 생명의 진화과정과 뇌의 신경뉴런세포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이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로, 실리콘 칩 위의 전기적 신호만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단순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운석 충돌과 대멸종


다윈 진화론에서는 비약적 진화는 설명할 수 없다!

 

 다윈은 진화의 과정은 천천히,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물의 역사에서 일어난 멸종은 그에게 혼란을 안겨주게 된다. 자연선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심각한 반증으로 보여진 것이다.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라우프는 네오다위니즘에 대항해서, 외계에서의 운석에 의한 대멸종 으로 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다. 6억년 동안에 5번의 대멸종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생물종의 75% 이상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종은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진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라우프는 최근의 멸종이 2,500만년이라는 주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2가지의 가설이 있다. 첫번째, 은하계안에 존재하는 태양의 쌍성이 공전을 하면서 태양계 안의 오르트 구름 지역을 지나면서 소행성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면서 거대한 소행성 충돌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두번째, 태양계는 은하계 중심을 일정 주기를 갖고 공전을 하는데, 은하면의 상하를 오르내리면서 소행성의 대규모의 충돌을 겪게 됐다는 것이다.

 

 라우프는 K-T경계의 멸종(백악기-3기의 경계)을 통해 공룡이 사라지고 포유류가 번성하게 된 이유를 자연선택이 아닌, 예기치 못한 사건에 대해서 공룡보다는 포유류가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포유류가 공룡과의 생존경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행성의 충돌은 2,500만년마다 한번씩 일어나는데, 이것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현상이고 그래서 이걸 통해서 자연선택을 통한 이점이 어떤 종에게만 편향적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대멸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생물의 진화는 정지됐을 거라는 파격적인 가설을 제기한다. 그러니까 꾸준히 진행되어 온 진화는 결국은 평형상태에 도달하고, 생물 종의 다양화는 정지되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멸종을 통해 기존의 생물 종들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면, 살아남은 소수의 종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진화가 시작되고 좀 더 다양한 종으로 분화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다양화로 인한 복잡성에의 경향은 의도된 자연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대멸종에서 랜덤하게 살아남은 종이 수동적으로 이끌려 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멸종을 일으키는 요인은 종 자신에 내재된 다이내믹스보다 물리적인 원인에 의한 가능성 쪽이 더 크다는 것이다.

 

 라우프의 견해는 자연선택을 만능으로 간주하는 견해를 지닌 네오다위니즘에 대멸종이라는 랜덤한 요소를 통해 반론을 제기한다. 그의 논의는 다소 파격적이고, 실험적 데이터가 아닌 사고실험에 의존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고생물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지만, 생물의 진화게임에 있어서 한가지 중요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행운을 타고난 것은 뛰어난 것보다 월등히 유리하다.

 

 

화성 생명의 비존재론


왜 화성에 생명 존재를 기대하는가?

 

 태고적 화성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1996년 여름, 충격적인 뉴스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드디어 지구 외의 외계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인가. 그런데 여기에 대해 NASA의 화성 연구 제1인자인 메케이 박사는 이 보고에 부정적이다. 그의 논의는 이렇다. 생명의 존재에 있어서 필요한 4가지 요소, 에너지, 탄소, 탄소 이외의 원소(질소와 황), . 여기서 에너지, 탄소, 질소 같은 것들은 명왕성에서도 발견할 정도로 우주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물은 생명이 탄생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물이 없는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는데, 화성에서 아직 물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화성은 지구와는 달리 대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이 살아가기에는 가혹한 환경으로 변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수로의 흔적은 관측되고 있다. 이걸 통해 과거에 존재했던 물이 지하속에 얼음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직접 화성에 가서 지표면을 파보기 전에는 그러한 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화성에 물이 발견되고,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한다면 운석이나 혜성을 통해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왔다는 생명의 우주기원설이 사실로 밝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생명이 시작됐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화성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과거에 존재했다고 해도 열악한 환경은 지구에서와 같은 진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언제까지나 지구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태양계안에 이주할 만한 행성이라면 화성이 가장 유망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화성을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을 테라포밍 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테크놀로지의 극한으로 상상할 수 있는 행성의 위치를 움직인다든가, 소행성을 행성에 충돌시켜 자전축을 기울거나 자전 주기를 바꾸는 등의 대담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지만, 메케이는 그런 방식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현재 지구환경에서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다. 화성을 지구와 같은 대기로 만들기 위해, 프레온 가스를 생산해내는 세균을 유전공학으로 만들어내서 화성대기에 퍼트리면 자연적으로 대기온도가 올라가고, 시간이 지나면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 된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그는 인간에게 행성을 바꿀 권리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을 개선하는 건 문제가 안되며, 이 세상은 결코 고정된게 아니라고 하다. 예를 들어 지구에 산소대기가 생긴 건 10억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곳 지금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낸다.

 

 

양자중력 이론 – ‘양자중력 이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도 일반사람들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한다. 어쩌면 쉬운 설명이란게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쿄 대학의 요네야 다미아키 교수가 최근에 물리학에서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는 초끈 이론에 설명하면서, 그것의 배경이 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알기쉽게 해설해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공에너지라고 불려지는 양자요동 현상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현실에서 경험할 일도 없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는게 불가능하다. 원자안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다. 그것은 마치 태양계안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과 똑같다. 여기까지 보면 원자의 운동을 뉴턴역학으로 설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원자는 왠만한 충격으로는 그 구조가 와해되지 않는다. 입자가속기를 통해서 강제적으로 깨뜨리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전역학에서는 물체가 회전하는 것은 원심력의 영향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떨어져버리고 만다. 그런데 전자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에너지가 줄어드는 법이 없다. 마치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세계를 지탱하는 모든 것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위험해진다. 전자가 존재하는 플랑크 스케일에는 양자요동이라는 현상이 존재하고 복잡한 진공의 요동의 효과로 인하여 무한대의 전자가 생겨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다미아키 교수는 끊임없은 입자와 반입자간의 충돌로 인해 생긴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추상적이다.

 

 이제 왜 양자중력이 필요한지 설명해야 겠다. 거시 세계의 일반상대성이론, 미시 세계의 양자역학은 자신의 영역에서는 실험결과와 놀라울만큼의 일치를 보인다. 그런데 두가지의 이론을 한꺼번에 적용하게 되면 무한대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와버린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두가지 이론을 합치게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플랑크 스케일에서의 양자요동 현상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곡면기하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당되는 공간이 평평해야 한다. 그런데, 미시세계에서의 양자요동은 끊임없이 에너지의 충돌 때문에 너무나 불규칙하게 분포가 된다. 그러니까 방정식을 적용하려고 하면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우주에서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동시에 적용할 만한 대상이라면 블랙홀이 있다. 기존의 방식으로 계산하면 진공의 요동으로 인해 엔트로피가 무한대가 되지만, 초끈 이론으로 다루면 엔트로피가 유한이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걸 통해서 초끈 이론이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의 통일을 완성할 강력한 후보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 기계론 비판


마음과 뇌와 의식에 대한 신간 서적들을 쓰러뜨리다!

 

 로버트 버윅 교수는 최근에 출간된 마음과 의식에 관한 신간서적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19세기에는 마음은 뇌안에 있는게 분명하므로 뇌를 절개하면 모든게 밝혀진다는 주장을 한 과학자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순진한 생각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컴퓨터와 뇌의 화상기술은 마음을 기계로 보려고 하는 문제 제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렇다. 우리가 칼에 찔려서 피를 흘리고 있다면, 각각의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똑 같은 것인가, 우리가 그림을 보고 있을 때 각각의 사람은 똑 같은 색깔로 인식하는 것인가, 음식을 먹을 때 각각의 사람은 똑 같은 맛을 느끼는 것인가, 이런 것들은 지극히 주관적이라서 한가지로 정의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데에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활동의 영역에 속하는 마음을 뉴런으로 구성된 뇌 알고리듬으로 환원하는게 가능하겠다는 것이 버윅 교수의 논의의 중심이다.

 

 로저 펜로즈는 마음을 신경뉴런세포 미소관 내부의 양자효과로 설명을 시도하고, 프랜시스 크릭은 회로의 미세한 진동으로 인해 생기는 움직임을 포착해서 분자(유전자) 수준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루는데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은 컴퓨터의 계산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의식이 생긴다고 생긴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10만년 전부터 자연선택에 의해 적응된 유전자를 몸 안에 지니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 몸안에 남아있다. 이기적 유전자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몸을 환경에 잘 적응하게 만들어놨다. 이러한 논의에서는 인간은 주체성이 결여된 유전자들의 생존기계로써의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왜 그런가. 만일 그가 전쟁에서 죽는다면 그의 유전자들은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러한 이타주의에는 그저 유전자를 연구함으로써 얻어지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의 의미가 숨어있다. 그것은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더 훨씬 뛰어넘는다는 창발성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을 자연선택된 신경컴퓨터라고 한다면, 개개의 유전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무엇인가, 페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폭력을 일으키는 유전자 지능을 높여주는 유전자 비만을 일으키는 유전자 아름답게 만드는 유전자 이런식으로 무엇무엇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수의 유전자들의 미묘한 결합으로 생기는 것인데, 생명이 없는 유전자가 어떻게 고도로 계산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뇌의 알고리듬, 신경뉴런세포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통한 기계적인 환원으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분자(유전자)로는 도저히 환원되지 않는 자연의 신비인 것이다.

 

 내가 커피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진화심리학자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그것은 당신의 내부에 있는 유전자가 오랜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자연선택의 결과에 의해, 후손을 낳으려는 이기적 유전자들이 협력해서, 뇌의 신경뉴런세포를 형성하고, 그러한 복잡한 뇌의 알고리듬을 통해서 형성된 마음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만든다는 식의 설명을 할 것이다. 그런데, 커피숍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나의 눈을 통해서이지, 내부에 있는 분자(유전자) 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현상을 연구하려고 할때는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단순히 유전자 중심주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의 대부분의 성격 변이의 약 50%는 유전적 요인에 의한다. 양친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최대의 영향은 수태의 순간에 결정된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천성이냐 양육이냐 라는 오랜 논쟁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이나 마음에 관한 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부분의 총화 이상의 것을 탄생시키는가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로버트 버윅 교수는 이런 경우에는, 그것을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삼켜버리라고 한다. 마치 뉴턴이 떨어진 곳에서 힘을 미치는 오컬트적인 힘 으로써 중력을 가정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설명에 납득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써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는데 어쩌겠는가. 


PS. 이 글은 2004.6.15일에 작성한 글이다.  자연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미친듯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밤에 잠이 안 올때 이 책을 읽는다.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선정해서 인터뷰한 내용과, 최신 글들이 실려있는데 과학의 다양함과 이론의 혁신성에 놀라게 된다. 일본에는 시리즈로 계속 나오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는 후속 편이 나올 기미가 안보인다. 이런때는 직접 원서로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외국에 비해 과학서적이 5년 정도 늦게 나오는거 같다. 이슈가 되는 과학자의 경우에는 빨리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과학서적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이 원인이 아닌가 한다. 올해에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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