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SF 도서관 1 - 세상의 생일 Edited by 가드너 도조와
자, 새 천년이 바로 우리 옆에 와 있다(음울하고 종말론적인 배경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우리가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까탈스럽게 달력을 따진다 해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22세기 초의 인간이, 그때도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이란 말이 여전히 같은 뜻으로 쓰인다면, 21세기가 어찌 될지에 대한 오늘날의 예측을 돌아보게 되면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순진하고 제한적인지에 대해 이와 유사한 신기함(대놓고 경멸할지 않는다면)을 느낄 것 같다.
SF문학은 장르로서의 특성을 논하기 전에 미래에 대한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50년대의 고전SF 작가들에게 있어서 21세기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때도 미래에 대한 불안한 전망은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희망에 찬 전망을 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겪은 인류가 그들의 잘못된 과거역사 대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문명의 발전과 성숙한 인류로의 진화로 이행하리라고 기대한 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시간이 흘렀고 이제 새로운 세대의 SF작가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7명의 작가들은 예전보다 훨씬 음울하고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흥미있는 몇몇 작품들 찰스 스트로스 의 항체(Antibodies), 어슐러 르 권 의 세상의 생일(The Birthday of the World), 낸시 크레스 의 구세주(Savior), 폴 매콜리 의 암초(Reef), 앨버트 코드리 의 크럭스(Crux) 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하고 선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암살당하면, 모든 이들이 그들이 어디에 살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해 준다. 그 당시의 일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고 한다면 말이지만 간디, 교황, 대처와 같이 역사를 알록달록 수놓은 인물들은 우리의 뇌리에도 깊이 박혀 있다. 정치인을 살해할 수는 있어도 그 사상은 보통 살아남는다. 그 사상은 나름대로 생명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수학자들의 사상은 얼마나 더 위험한 것인가?
항체 – 찰스 스트로스
세상의 멸망이란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한다. 오랜 세월동안 수학자들이 그토록 풀고자 염원했던 NP 완성문제를 누군가가 풀었고 그것을 웹에 게시한 순간에 세상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인터넷상의 모든 암호체계를 무력화시키고, 기계의 인간의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엄청나게 발전된 컴퓨터에 대항해서 인간의 지능이란 너무나 무력하다. 몇몇의 사람들은 기계의 지배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왜 항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이 모든 것은 농담에 불과하다. 겨우 NP 완성문제 하나로 인류가 끝장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지금의 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운영되고 있고,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러한 위험이 발생할 확률이 커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인류를 풍요롭게 하기위해, 아니 어쩌면 그 자신만의 명예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수학자들은 평생을 바쳐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그들의 노력의 결과로 인해 세상이 멸망하게 된다면 우리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과학의 발전이란 그 스스로 의도하지 않아도 멸망으로 이르게 하는 속성을 그 내부에 지니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까.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불안하므로…
신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거짓된 신을 갖고자 했다. 여러 해 동안, 비록 지금은 드문 일이 되었지만, 사람들이 치믈루로 올라와서 타주와 내게 도시로 내려와서 신이 되어달라고 간청하곤 했다. 세상의 생일 – 어슐러 르 권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중 하나인 르 권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인간과 똑같이 결혼하고 애기를 낳고 전쟁을 하고 죽음을 맞는다. 인간들에 의해 신이 된 존재는 죽을때까지 신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여기 그들만의 의식으로 신이 된 한 여자가 있다. 그러나 신이 되고자 하는 오빠에 의해 납치를 당하고, 겨우 풀려나고 성으로 피신을 하게 된다. 반란군에 의해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여신은 아무런 힘이 없다. 이때 예언에서 말하는 진짜 신들이 찾아오게 된다. 인간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칠 때 신을 찾게 된다. 도와주소서! 하지만 그런 기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언제나 신에게 의존하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진짜 신이 나타나고 나서 여신은 스스로 인간이 되고자 한다. 평범한 여자로서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대도 여전히 그녀를 찾아헤메는 어리석은 인간들, 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그들에게 진정한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너무 늦은 것이다. 3세기에 걸쳐 인류의 파멸과 회복을 목격해 온 우주 알이 이미 AI를 구원해 냈다. 그리고 아마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몇 번이고 계속, 반복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그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러나 인류를 구원하진 않을 거다. 인류는 이미 난장판이고, 낭비적이고, 완고하고, 비효율적이고, 탄력적인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사례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구세주 – 낸시 크레스
2007년 어느 날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알이 떨어진다. 세계는 지적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알을 연구하려고 하지만 방어막이 쳐져 있어서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과연 어디서 보내진 것일까? 왜 지구에 왔을까? 수많은 가능성들이 나왔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러다 인류는 환경오염이 가져온 내분비 호르몬으로 인해 대몰락을 겪게 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적 능력이 퇴화해 버린다. 하지만 인류는 남아있던 과학지식으로 다시 예전의 과학문명을 건설하게 된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외모를 변화시키고, 지능을 향상시킨다. 288년동안 알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저 머나먼 우주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들이 힘들때는 알에 관심을 갖고 의지를 하지만, 발전된 과학문명으로 위기를 벗어나면 거짓말처럼 알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인류가 구세주를 대하는 태도는 항상 이런식이다. 어쩌면 인류에게는 구세주가 필요없는지도 모르겠다. 인류에게 있어서 구세주는 바로 그들을 멸망시켰던 첨단 과학문명일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AI 를 그들의 행성으로 보낸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알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인류로부터 그들과 닮은 텐샤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니까…
시민들은 실크 침대에서 자고, 진짜 고기를 먹고, 바보 같은 게임을 하는데, 우린 제한된 예산으로 그들이 준 일을 해야만 해. 저 암초는 세기의 발견이야, 아른, 하지만 하느님은 시민들이 스스로 애쓰는 걸 금지했어. 그래서 우린 일을 하고, 그들은 장미 꽃잎 안에서 섹스나 하다가 영광을 얻는 거지. 암초 – 폴 매콜리
태양계 밖에서 생명체가 발견된다. 그들은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짧은 시기에 엄청난 도약을 통해 진화해 왔다. 미래의 사회 역시 엄격한 신분제로 운영이 된다. 소수의 혜택받은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일을 한다. 마거릿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암초를 발견하게 되고 연구하려고 하지만, 낯선 생명체에 위험을 느낀 지배층은 연구를 하지 못하게 한다.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는 마거릿은 결국 생명을 건 모험을 하게 된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암초를 연구하려고 한 것은 과학자로서의 진리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킬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신념에 찬 한사람의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전 세계적 파괴의 위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스테프는 머리를 흔들었다. 곧 끝이 닥쳐올 이 세계의 일상성이 경이로웠다. 그는 곧 재와 먼지가 되어버릴 이 사람들을 헤치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확고함과 앞으로도 오랫동안 존재할 것이란 명백한 확신에 대해 놀라워했다. 크럭스 – 앨버트 코드리
2091년 인류는 핵전쟁으로 인해 120억의 사라지고,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 그런데 Crux 라고 하는 비밀단체가 웜홀러라는 장치로 과거로 돌아가서 120억의 인류를 구원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Crux 에 속해있는 드예바는 웜홀러를 통해 2091년으로 가게되고, 현실을 지키기 위해 스태프도 따라가게 된다.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음울하고 어둡다고 할지라도 전혀 아무 상관도 없는 과거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현실을 지워버린다는 사고방식이 가능한 걸까? 드예바는 그녀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삶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너무나 사랑하는 문명을 복구시키기 위해 Crux 에 가입하게 된다. Crux는 라틴어로 결정적인 지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인류를 파멸시킨 결정적인 지점 2091년에 그녀가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신은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런데 멸망후의 인류가 그 전에 비해서 새로워졌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고, 난 그걸 알고 있다. 이 세계는 마치 신이 보호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굳건하다. 하지만 이런 세계를 보호하는 신이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신이란 말인가?
음, 글쎄다. 우린 어차피 구제불능의 세계에 살고 있단다.
PS. 이 책은 2004년 5월 19일에 작성한 글이다. 책 속의 모든 단편들을 다루려다 보니 내용이 많이 산만하다. 이 책은 2001년에 미국에 발표된 책이다. 한국 사람들이 두꺼운 책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출판사는 3권으로 나눠서 나왔다. 1권 "세상의 생일"은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해서 가지고 있고, 2권 "유전자가 수상하다" 은 구매하려고 보니 절판이다. 게다가 3권은 나올 기미가 안보인다. 우리나라에서 SF 문학은 아직 비주류 영역이다. 좋은 단편들이 많이 실렸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가격이 좀 높더라도 한권으로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들 (0) | 2007.03.01 |
---|---|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0) | 2007.02.28 |
데미안 (0) | 2007.02.28 |
과학 '대가설' (Emerging New Scientific Theories) (0) | 2007.02.28 |
모래의 여자 (0) | 2007.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