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책 -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나요? 그러니까 새 책을 사기 위해 3층 짜리 대형서점으로 간다고 해보죠. 바로 입구에는 눈길을 끌 만큼 번쩍이는 화려한 그림의 표지로 된 책들이 특별가격이라는 빨간 딱지를 붙이고 당신을 유혹합니다. 그 뒤로는 눈길 닿는 곳마다 책들이 쌓여 있습니다. 3천 평방미터의 넓이에 희미하게 불빛을 반사하고 있는 표지들이 보입니다.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판타지소설, 요리 책, 원예도서, 임신과 육아, 세법, 남성들과 라이프 스타일, 브라질의 역사와 커피의 역사에 관한 책…… 당신은 30분 정도 여기저기 살피다 결국은 ‘아무 책도 발견하지 못하고’ 가버립니다. 선택할 것은 책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간서적만 읽는다고 해도 다 읽기가 힘들다. 그리고 책은 더 이상 첨단의 매체가 아니다. 자연과학 서적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최근의 자료를 구하려면 인터넷을 검색하면 된다. 감당할 수 없는 자료의 방대함에 놀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왜 굳히 시대에 뒤떨여진 책을 힘들여서 읽어야 할까. 저자는 현대인이 전문가가 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정보홍수의 시대에 어쩔수 없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성, 여성, 문명, 정신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고전을 읽어야 된다는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자신의 존재의의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책들의 목록을 나열하고 그걸 주제별로 나눠놓았다. 우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건 대부분의 책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를 통해서 언급한 책들조차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거다.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기준으로 책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문화적인 의의를 기술하는데 저자의 놀라운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파우스트는 초인적인 영역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식욕의 충동에 이끌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저항에 초인적인 의지로 결연히 맞서나가는 유형의 남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파우스트는 인간의 삶의 한계에 대항하여 싸우고, 윤리에 의한 한계 설정을 거스르며, 지식과 능력의 한계에 도전한다. 요컨대 그는 인간 세계의 한계에 맞서는 인물인 것이다.
우선 이 책은 세계를 움직인 고전으로 [성서] [오디세이아] [신곡] [돈키호테] [파우스트] [인간희극] [모비딕] [율리시스] 같은 책들을 언급한다. 챕터 제목을 봐서 여기 나와있는 책들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고전들임에 분명하다. 한가지 아쉬운 건 이 책이 철저히 유럽 위주의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건데, 저자가 독일인라는 걸 감안하면 크게 흠잡을 건 아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내면에 가진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주제의 광범위함과 인물의 세밀한 내면묘사, 특히 파우스트 박사의 내면을 하나님과 악마의 갈등으로 묘사한 부분은 탁월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부, 명예, 지식, 권력, 아름다운 여인 으로도 인간은 만족하지 못한다. 그럴때 인간은 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현대에 이 정도의 명성을 갖고 있는 소설도 없다. 난 이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았지만 영화형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단선적이고 갈등의 고조를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근대소설과 달리 의식의 흐름과 도저히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복합적인 구조. 그 어려움만큼 수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소설. 난 왜 지금까지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소설을 읽지 않고 세상을 애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스틴이 묘사하고 있는 사랑은 무정부의 혼란 상태가 아니라 일상을 마법으로 바꾸는 일이다. 오스틴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마술을 보여주며, 아울러 사랑의 현실과 허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사랑의 성공을 보여준다. 그녀의 소설은 현대 사회의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 하겠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인 사랑을 표현한 작품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 [위험한 관계] [신 엘로이즈] [오만과 편견] [적과 흑] [친화력]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에피 브리스트] [롤리타] 내가 이 중에서 읽은 책은 3권 밖에 안된다. 지금까지 내 독서는 너무나 빈약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난 어쩌면 고전의 가치에 대해서 과소평가 했음이 틀림없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편견 때문에 말이다. 제인 오슨틴의 [오만과 편견] 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저 그런 연애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책이 19세기 초에 씌여졌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여성의 존재는 주체성을 가진 인격이 아니라 남성의 보조적인 존재로 머물러야 했다는 사회적 불평등도 감안해야 한다. 그녀의 소설은 인간이 가진 감정의 격정 대신 틀에 박힌 인물설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러한 성향은 그녀보다 한세대 뒤진 샬롯 브론테 에게는 답답함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그녀의 소설은 보편적인 인간정서를 표현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난 이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제목이기도 한 Lolita의 의미는 알고 있다. 이건 나이 많은 남자의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 집착을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단어는 금기의 단어로 쓰이고 있고, 어기게 되면 법적 구속력을 받는다. 남자들이 어린 소녀에게 집착하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남자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결코 해서는 안될 금기를 깨트리는 것에 대한 쾌감일 뿐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30살이 넘은 남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중.고등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밀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저서들이 등장한다. [군주론] [리바이어선] [통치이론] [사회계약론] [미국의 민주주의] [공산당 선언] [자유론] 난 여기에 있는 책들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 사회과학 서적은 전공이 아닌 한 왠만해서는 읽기 힘들다. 시대배경을 이해해야 하고 개념들을 알아야 되는데 그 복잡함에 질려버리기 마련이다. 한 번 읽어서 이해가 되는것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은 너무나 유명해서 현대의 정치를 설명하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권력은 가만히 있는다고 유지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의심과 정적을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권력자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보여줘서는 안되고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한다. 이 모든것들은 불합리하게 보여지지만 권력의 속성을 투명하게 나타냈다는 점에서는 기념할 만한 책인 것이다. 몇 챕터에 걸쳐서 언급되는 사람이 있다. 18세기에 전 유럽에 루소 열병을 가져왔다는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에서 그는 인간의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속박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가치체계를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 말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된다. 그는 개인의 모든 권리를 공동체에 맡기고 공동체의 이익에 따라 사는게 개인에게 더 큰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사실 인간을 너무 선하게 본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구성원 중에서 나쁜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나타나서 지배자의 위치에 올라가게 된다면 그 전체주의 정권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지성이 한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준다. 그리스어, 역사 고전, 기하학과 대수, 라틴어, 뉴턴의 저서,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와 경제학, 프랑스어, 화학, 식물학, 계몽주의 철학 이 모든 걸 16살에 다 했다면 믿어지는가. 유럽지성사에서 최고의 천재로 밀을 지목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오직 지식만을 추구한 밀은 20살에 우울증에 빠져버리고, 사회의 가치를 강제로 주입하는 지성에 대해서 반발하고 개인은 독자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와 개성의 존중은 현대에 와서 부각되었고 밀의 주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카사노바는 여성을 소비했다. 그는 여성을 즐기고 사랑했으며, 존경하며 누구에게서나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여성들을 주목했으며 방탕이라는 자신만의 도덕을 가진 특별한 우주에서 살았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딸과 침대에 드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성 [데카메론] [발라드] [무례한 아이들] [패니 힐, 한 매춘부의 회상] [생갈의 J. 카사노바 회고록]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 [채털리 부인의 사랑] 성에 대해서 입에 담는 것 조차 교양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문학은 대담하게 사람들의 욕망을 표현해 냈다. 현실에서 얻지 못할 만족을 문학을 통해서 해소했던 것이다. 카사노바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평생동안 수 많은 여자들과의 사랑을 했던 인물이다. 상류층 부터 하류층까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면서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왜 여자들이 카사노바에게 빠졌냐는 거다. 그건 카사노바가 단순히 여자를 성욕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특별하고 열광할 대상으로 여겼다는 거다. 우리가 과학이나 철학에 평생동안 헌신하고 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카사노바는 여자들에게 열중함으로써 평생을 보낸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현대 자본주의의 근원이 청교도의 종교적 윤리에서 나왔다는 막스 베버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경제와 종교 사이의 관계가 [로빈슨 크루소]를 이해하는 열쇠다. 청교도 디포는 ‘채무’의 개념을 ‘죄’의 개념과 동일시했다. 그의 파산 체험이 로빈슨의 난파와 상응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디포가 경제적 손실을 당했다면 로빈슨은 도덕적인 재난을 당한 것이다. 디포가 채무를 진 것처럼 로빈슨은 죄를 지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가치 경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로빈슨 크루소] [국부론] [자본론] [서푼짜리 오페라]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도널드 덕] [99프랑] 이 중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책이 하나 있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이 책이 왜 경제에 관련된 책일까. 소설의 저자인 디포와 소설속의 주인공인 로빈슨을 대비시키면서 자본주의 경제를 만들어낸 청교도적 도덕성의 가치를 설명한다. 로빈슨이 무인도에 갖힌 것은 신의 계명을 어기고 모험적인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고, 무인도에서도 여전히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일기를 씀으로써 하루를 반성함으로써 죄의 채무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에서 이 정도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저자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독서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게 아니라 좀 더 높은 정신세계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라는 걸 이 챕터를 읽으면서 느꼈다.
그리어는 여성의 일상에서 참을 수 없이 넘쳐나는 수많은 상황들을 열거했다. 성적인 감시, 폭력, 매체들이 선전하는 여성의 미를 통한 테러 등. 그녀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육체를 모발이 없고 냄새도 없으며 모가 나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이상적 풍경으로 만들어 노화 현상의 모든 조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화장품의 독재에 대해 저항할 것을 호소했다. 그녀는 “여성들은 남성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로 여성들의 반란을 유도했으며, 남성들의 성에 존재하는 폭력의 잠재성을 공격했다. 또한 여성의 성적인 자기실현을 요구했고, 사랑으로 하는 결혼이란 감상적인 넌센스라고 주장했다.
난 개인적으로 이 챕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여성의 권리옹호] [자기만의 방] [제2의 성] [거세된 여성] [작은 차이] 여성이 한 인간으로 대접받은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성의 액세서리로 여겨졌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고 토론을 할 할만 능력이 없다고 단정지어졌다.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여성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사회에 많은 참여를 하게 되지만 여전히 남성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저메인 그리어의 [거세된 여자]는 가장 과격한 페미니즘 일 것이다.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을 거세해 버리자는 것이다. 여성이 외모에 신경쓰는건 자연적 본능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강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적능력보다는 성적으로 유혹할 만한 육체적 매력이 더 중요시 되었을 것이다. 현대화 되었다는 지금의 관점으로도 그리어의 견해는 급진적이다. 몇 백년이 흘러도 그녀의 주장대로 여성들이 스스로 화장품의 독재에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현대 여성들은 화장품의 독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신체의 일부를 변형시키는데도 별다른 저항이 없다. 이러한 현상이 그리어의 주장대로 남성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어의 시대에서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성의 주체성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 아마도 그리어는 지나친 여성주의의 관점에 빠져버린듯 하다. 남성과 여성은 대립하고 지배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하는 관계다. 하지만 그리어의 주장을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현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순수성을 읽고 여성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긴 했어도 그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무엇인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과도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여성이 진정한 주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이것은 인간적인 고통의 바다이고 모든 인간적인 불운의 정점이다. 어떤 신체적인 고통도 이에 견줄 수 없으며, 어떤 고문도, 어떤 뜨거운 강철도 이에 비할 수 없다. 어느 폭군이 고안한 고문 기구들 중의 어떤 것도 이것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고문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최초의 문명병인 ‘우울증’이다.
근대와 구별되는 현대인의 특성은 문명화 되었다는 것이다. [궁정인] [우울증의 해부] [희극] [학예론] [라모의 조카] [부덴브로크가] [계몽의 변증법] [문명화 과정에 대하여]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이라면 로버트 버턴의 [우울증의 해부]일 것이다. 난 이 책에 대해서 처음 들어봤는데 문명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가장 고통스러운 질병인 우울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와 달리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다. 살아가면서 피해 갈 수 없는 우울증은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버턴은 우울증을 인간의 네 가지 기질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기존의 이해 불가능한 현상으로부터 물질로 환원할 수 있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주장한다. 이것은 우울증은 치료될 수 있으며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다. 유럽지성을 대표하는 장 자크 루소가 [학예론]을 통해 또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는 루소가 문명비판을 하게 된 계기와 문명의 발전에 반대하게 된 계몽주의에 대해서 설명한다. 놀라운 지성을 가진 루소의 이중적인 면모도 흥미롭다. 그는 [에밀]에서 책을 읽는 것을 비판했지만 자신의 이념을 책을 통해 전파했다. 언제나 정직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자신이 정직하지 못한 건 다른 사람때문이라고 책임 전가를 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문명비평가 로써 루소의 자기모순 적 태도는 비판받아야 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은 루소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을 것이고 그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하루 중 가장 어려운 일은 밤에 일어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항구에 있는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곳-글자 그래도 꿈에서 –에서는 우리 정신의 정돈과 분류의 힘든 작업이 처리되어야만 한다. 우리들이 꿈을 관찰한다면 이런 수고에 대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우리들이 이런 이면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들의 영혼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들이 실제로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다. 그후에 꿈속에서 우리들의 가장 비밀스런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본다. 이런 꿈들이 나타내는 것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주저 없이 분출되는 성적인 욕구다.
영화, 연극, 드라마를 비롯한 영상 텍스트를 해석할 때 정신분석은 유용한 도구가 된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분자생물학이 인간의 정신을 물질로 환원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무의식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서 무의식의 정체를 성적 욕망을 통해서 해명한다. 더 나아가 서구문명이 인간의 이성이 아닌 충동 해소를 바라는 억눌린 욕구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의식이라는 건 말 그대로 의식이 없다는 건데 존재하지 않는걸 무슨 수로 분석한단 말인가. 그게 실제로 있다는 걸 알수도 없는데 말이다. 무의식에서 의식이 나온다고 하면 그 무의식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대상으로 이론을 전개한다는게 가능할까. 앞으로 계속 생각해 볼 문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마도 이것은 현대 소설 중 가장 악명높을 것이다. 4,000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과 소름끼칠 정도로 복잡한 구성.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소설의 난해함에 도전하고 싶다. 소설을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오락물이 아니라 다 읽었을 때 성취감을 느끼고 지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가치있는 대상으로 말이다.
서양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전혀 읽지 않았을지라도 그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의미에 대해서 제인 오스틴은 이미 2백 년 전에 정확하게 요점을 지적한 바 있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를 알게 된다. ……그의 사상과 아름다움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그것과 만날 수 있고,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신뢰한다.(Mansfield Park)” 누구든지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는 한 번 셰익스피어에게 붙잡힐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시대를 초월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그의 천재성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는다. 혹시 셰익스피어는 가공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천재 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 옥스퍼드 백작, 엘리자베스 1세, [우울증의 해부]의 저자 로버트 버턴, 영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하지만 이러한 의문들은 근거가 약하다는게 드러났다. 어쩌면 이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세계는 어떤 식으로 보여지게 되었을까. 그건 결코 알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재미없었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어떤 점에서는 K.가 법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법이란 법이다” 라고 주어진다. 법을 이해하기 위하여 K.역시 법으로 들어가야 한다(그래서 K.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장소를 찾는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것과 아주 유사한 것이 카프카 해석이다.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 힘들게 그 흔적을 찾은 끝에 도달하게 된 인식은 찾고 있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는 과거의 모든것과 단절된 전혀 새로운 세상이다. 인간은 좀 더 복잡해지고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댈러웨이 부인] [황무지] [마의 산] [심판]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특성 없는 사나이] [고도를 기다리며] 카프카는 현대 작가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법률가로서 프라하의 한 보험회사에서 일한 직장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고 이런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해 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극대화 된 작품인 [변신]에서는 하룻 밤 사이에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잘 돌봐 주지만 그의 끔찍한 모습에 혐오감을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과를 던져 벌레를 죽여버리고 가족들은 여행을 떠나고 행복해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의 소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왠지 슬픔이 느껴진다. 인간으로써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사회의 가치를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개인의 나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대에서 인간의 생활방식은 과거에 비해서 훨씬 복잡해졌고 그에 따라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사회의 규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억지로라도 사회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끝까지 저항해서 죽어야 할까. 카프카는 20세기 초 유럽문명의 합리성 속에 감춰진 광기와 폭력을 발견한 건 아닐까. 수천만명의 사람이 세계대전으로 죽고 난 후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하게 된 것은 아닐까. 카프카의 작품이 부조리하다고 하지만 인간 내면에 숨겨진 부조리보다는 못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창시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인 메리 셀리는 19살에 잊혀지지 않는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괴물이 창조자를 죽여버리는 내용인데 요즘이야 이런 이야기가 그다지 무섭지 않지만 19세기 초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인공생명에 의해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다는 상상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이 소설은 2가지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데, 예술가는 더 이상 세계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조를 해 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재는 스스로의 의지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발전된 자연과학으로 인간은 생명을 창조해내는 신의 위치에 서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21세기 현대에도 유효한 가정이다. DNA를 통해 인간을 물질로 환원시키고 불완전한 인간본성을 과학의 힘으로 고치려고 한다. 유전자 복제를 통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 멀지 않는 미래에 생명 창조의 비밀이 밝혀지면 엄청난 인식의 전환이 올 것이다. 인간은 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괴물이 될 것인가. 브람 스트커의 [드라큘라]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 백작을 통해 이성에 의해 감춰진 성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정숙한 여성들이 피를 빨리고 나면 남자들을 유혹하는 음탕한 흡혈귀가 되 버린다. 빅토리아 시대의 경직된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억눌린 성욕을 드라큘라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재미를 위한 통속소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식의 폭을 넗혀준다. 우린 책의 즐거움에 빠지면서 동시에 문명과 인간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가 있다.
우린 일반적 상식에 어긋나서 소수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즐기는 것을 컬트 현상이라고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이 책을 아직까지 읽지 못한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젊은 여성 로테를 사랑하게 된다. 영혼이 통하는 두 사람은 사랑을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딧치는데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시민계급인 베르테르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살하게 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전 유럽에 ‘베르테르 열풍’이 불게 되면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감성을 그대로 흉내내고 되고 자살하게 되는 경우까지 일어나게 된다. 21세기도 이런 열병에 자유롭지 않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베르테르가 자살하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약혼자가 있는 여자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것도 그렇고, 세상에 넘쳐나는게 여자인데 꼭 그렇게 죽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감성이란 스스로 느끼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연애를 해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연애의 감정을 느낄수 있겠는가. 감성이란 무책임한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되어 버린다. 이러한 내면성으로의 집착은 외부세계에 대해서 무관심 해지고 결국 개인에게 더 큰 불행이 되버리는 결과가 된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는 문명에 비판적이고 자기의 내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애기다. 그는세상 사람과 절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인생의 밝은 면을 애써 부정한다. 그러다 창녀 헤르미네를 만나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마약을 먹고 ‘마법의 극장’으로 들어가서 내면에 있는 수 많은 자아와 마주치게 된다. 이 소설은 사회 변두리에서 살아가던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열광적으로 읽혀지게 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길수 있는 책. 가장 가까운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으로 읽힌 책이라면 더글라스 커플랜드의 [X세대] 일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서 스스로의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미래를 위한 준비 대신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개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호 역시 이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매체에 의해 끝장나고 말았다.
미래를 예견할 땐 우린 두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토마스 머어의 [유토피아] 사유재산이 없고 계급차이가 사라지며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하며, 높은 수준의 사회적 윤리를 가지고 있는 집단을 이야기 한다. 그들의 종교는 기독교 국가의 종교와 유사하다. H.G.웰스의 [타임머신] 은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과학자의 애기다. 80만년 후의 미래는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가 아니었다. 인류는 땅위에 사는 우아한 엘로이스와 땅밑에 사는 야만적인 모르록 으로 갈라지게 된다. 인간은 과학기술이 영원할 거라 믿지만 한계에 부딧치게 되고 퇴보를 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정신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진화론에 의해 보다 환경에 적응한 요소들이 살아남게 되고 부적절한 요소들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정신에 있어서 어떤 것들이 미래에도 살아남게 될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열정적인 사랑, 지적 욕구 같은 밝은 속성들이 살아남을까 아니면 파괴욕구, 쾌락에 대한 집착, 무서운 증오와 같은 나쁜 속성들이 살아남을까. 웰스에 의하면 우리의 미래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문명이 파괴된 야만의 시대, 먹느냐 먹히느냐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인간의 이성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웰스는 비관적이다.
두명의 (아니면 그 이상의) 상대방과 함께 게임을 한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적어도 그중 하나는 어른이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이여야 한다. 그 게임은 어른이 게임에서 따라야 할 규칙을 미리 알려주고 아이는 항상 그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만약 그 규칙들이 너무 엄격할 때는 물론이고, 특히 그 아이에게 그 규칙의 의미가 아주 불분명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어른은 아이가 복종하게 된다면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가 성장하면 그 게임은 끝이 난다. 그 게임의 이름인즉 ‘빅토리아 시대의 교육’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주 이상한 소설이다. 난 처음에 이것을 만화로 접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 토끼가 말을 하고 하트 모양의 여왕이 무서운 얼굴로 쳐다본다. 어렸을 때는 전혀 다른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지도 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는 정말 이상할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그저 게임이라고 해 버린다. 루이스는 12살의 앨리스 리델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그 후 다시는 앨리스를 만나지는 못하게 된다. 루이스는 자신이 사랑하던 앨리스를 소설에서 등장시키고 이상한 모험을 시킨다. 빅토리아 시대의 경직성을 비판하기 위해서 말이다. 난 지금까지 이 소설이 사회비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고, 이 소설이 훗날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에 영향을 주었다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현대 유럽문명을 만들어낸 책들을 나열하고 있다. 세계, 사랑, 정치, 성, 경제, 여성, 문명, 정신, 셰익스피어, 현대, 통속 소설, 컬트문학, 유토피아 : 사이버 세계, 학교 고전, 아동도서 라는 챕터를 통해 10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책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서평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의미와 당대 사회에 미친 영향들에 대해서 광범위한 지적 성찰을 통해 열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고 웃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비밀스런 통로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또한 수 많은 책 들중 과연 어떤 것들을 읽어야 되는지에 대한 지침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 책에 나와있는 100권의 책을 읽고 당대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엄청난 지적 성취를 얻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
P.S 이 서평은 2004년 10월 14일 에 작성했다. 독서모임 관련해서 작성한 책인데,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 가격이 비싸서 구입은 안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고전문학, 철학, 페미니즘에 대해서 중요한 책들을 소개했는데 시간나서 읽어봐야지 했는데 큰 소득은 없다. 요즘들어 체계적으로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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