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달에 내가 본 영화목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영화란 꿈을 실현해주는 수단이면서 동시
에 현실도피의 측면도 있다는 거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은 현실의 고민들을 잊어버릴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런데 이런 멋진 순간이 깨질때가 있다. 자신만의 예술세계에 빠져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배신하는 것처럼 화가나는 것도 없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 는 정말 기대이하였다. 그건 시나리오의 부실이나 연기자들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를 보는내내 너무나 답답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못할까. 우리에게는 감각의 제국 으로 알려져 있고 시대를 앞서갔고 현실의 모든 가치관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극단적 자유주의자였던 오시마 나기사 의 신작은 너무나 시대착오적 영화였다. 2004년의 관객들은 이젠 더 이상 그런 것으로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 대부분은 그의 심혈을 기울인 신작에 실소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슬픔으로 다가왔다. 기타노 다케시, 다케다 신지, 아사노 타다노부 같은 일류급 배우들의 열연으로도 그것은 채워지지 못한다.
또 하나의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의 란 은 그런 의미에서 경의로운 영화다. 처음 접해보는 그의 영화는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악의 본성과 도저히 피해갈수 없는 운명에 대해 마치 연극을 상연하듯이 보여주고 있다.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단조로움을 다양한 캐릭터로 메꾸는 그의 솜씨는 놀라움 그 자체다. 일본 전국시대의 무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였다. 그 시대에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깨고 평화를 얻고자 하는 순간 죽음과 같은 고통이 몰려온다. 이것을 당연한 인과응보라 봐야 할 것인가.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죽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구로사와 아키라는 여기에 대해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는 사랑이고, 그것은 어떤 희생을 통해서라도 구할 가치가 있다는 암시만 남길 뿐이다.
이제 현재의 일본영화를 보자. 나가사카 슈우카 의 오토기리소우 는 과연 공포영화일까? 오키나 메구미 를 통해서 주온2 가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주온2 에서의 공포의 디지털화는 오토기리소우 에서 한단계 더 심화된다. 문제는 이게 업그레이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을 디지털로 캠코더 속을 현실로 표현한 건 나름대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그게 너무 뻔하다는 데 있다. 관객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설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으로 변한다. 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것일까. 솔직히 요즘 들어오는 일본영화는 정말 마음에 안든다. 수입사들은 이게 정말 흥행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들여오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관객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거다. 시사회가 진행되는 88분동안 단 한번도 관객석에서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요즘 공포영화의 추세가 디지털화 되고, 스타일이 중요시된다고 이건 너무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황당함은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난 처음부터 어느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나가사카 슈유카 정말 실망이다.
정말 실망스런 또하나의 작품 Taking Lives (타인의 인생 살기) 설정은 그럴듯하다. 모든 범죄영화가 지니고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범죄자, 그를 쫒는 매력적인 여형사, 사건에 혼란을 주는 의외의 인물, 마지막의 반전. 하지만 영화는 너무 지루하다. 안젤리나 졸리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똑같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관객들은 무엇을 발견해야 하나.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보기 위해 돈을 내고 영화를 봐야할까. 마지막 반전에서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범죄스릴러의 모든것인 시나리오의 부실 때문이다. 난 이제 화면분할 같은 어설픈 편집만 보면 화가난다. 감독과 제작사는 이런 영화가 지금 이 시대에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 유명한 조지로메로의 시체3부작 중 2번째 이야기를 리메이크 한 새벽의 저주 난 이제목 정말 맘에 안든다. 시체들의 새벽 이 더 멋있지 않나. 사실 이 영화를 공포영화라고 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 그건 영화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포와는 약간 다른 감정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느날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그건 피를 통해 전염되는 죽음의 바이러스이다. 거기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건물속에서 그들만의 행복을 만들어나가지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멀리 도망가기로 계획을 세운다. 중반까지의 진행은 대니보일의 28일후 와 닮아있다. 그런데 이건 사실과 다른다. 왜냐하면 좀비영화의 원조는 시체3부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리메이크 한 작품이 28일후 보다 늦게 개봉이 되니까 일어나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섬찍한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이 괴물로 변하고 그를 죽이는 순간이다. 인간들은 얼마나 약한 존재들인가. 사랑으로 모든걸 구원할 수 있을거라고 믿지만 그것이 깨지는 순간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가장 인상적인 엔딩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크레딧에서의 헤비메탈 음악과 순간적으로 보여지는 살육의 장면들.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고,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비극적 운명, 이토록 극명하게 묵시론적 비전을 보여준 영화가 또 있을까. 원작보다는 못한 고어장면들은 마지막 30분간의 놀라운 스피드와 박력으로 충분히 보상됐다. 헐리우드 시스템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를 지닌 작품이 나왔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지금까지 일본영화 너무 혹평만 했는데,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하다. 이와이 슌지 의 스왈로우 테일 사실 이 영화는 작년에 상영한 적이 있다. 메가박스에서 1주일 동안 일본영화제 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 당시 가장 흥미있는 작품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 봤는데 이번에 보고나서 완전히 빠져들었다. 내가 보는 최고의 시나리오의 조건은 관객들이 절대 내용을 알아낼수 없을 정도의 난해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다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캐릭터를 부여하는 고도로 지능화된 작업이다. 엔타운, My way, 마법의 테이프, 마치 왕가위를 연상케 하는 원색의 강렬한 장면들, 이민족 차별에 대한 정치적 의미, 유전자를 연상케 하는 나비문신, 기억을 되살리는 최면술. 수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난 무엇을 발견했을까. 어쩌면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수많은 장면들이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오직 한가지 방법 마음으로 느껴야만 이해 할 수 있는 보기드문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이 슌지의 96년작에 열광하는 동안 또 하나의 영화작가라고 불릴 제인 캠피온 의 인더컷을 봤다. 그녀는 그동안 영화의 내면적 완성도보다는 테크닉에 신경을 쓴 거 같다. 맥라이언을 주연으로 기용한 건 솔직히 의외지만 연기에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연성이라는 측면은 실망스럽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연쇄살인범을 잡아야 한다는 것과 한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추적하는 과정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작품 자체에서 그녀만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작품전체에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간혹 나타나는 범죄의 현장에선 엽기적인 시체가 나오고, 화면 전체에서 피냄새가 진동한다. 왜 여자의 목을 잘라야 하는 거지. 그것도 그렇게 잔인한 장면으로, 난 이영화가 여성영화제 개막작 이라는게 이해가 안된다. 이건 여성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단순한 스릴러 물이다. 그것도 고도로 발달된 살인기술 테크닉으로 말이다.
난 이 영화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사실 재밌게 보긴 했다.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정말 말그대로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나머지 스토리는 별로 애기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유럽의 문화를 봤다는데 의의를 삼고 싶고, 한가지 더 그녀에게 의 히로인 레오노르 와틀링 의 매력적인 모습을 봤다는데서 위안을 삼고 싶을 뿐이다.
얼굴길이만큼 느끼한 벤에플렉이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한다. 놀라울 정도로 배역에 몰입해 있다. 반지의 제왕의 요정 리브 타일러 그녀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달리 시골의 순수(?)한 비디오 점원 역할을 잘 소화한다. 그리고 리켈 카스트로 의 앙징맞은 모습, 솔직히 다코다 패닝에 비하면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열연을 하는 모습이 귀엽다. 문제는 너무나 열성적인 배우들에 비해 창피할 정도로 허술한 시나리오다. 이 정도로 판에 박힌 시나리오가 또 있을까. 케빈 스미스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몇 년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아담 샌들러의 미국식 유머는 솔직히 너무 역겹다. 물론 그가 재미있다는 건 알지만 내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미국식 유머를 30분이나 해대는건 참기 어렵다. 하지만 드류 배리모어가 연기한 단기기억 상실증 환자 루시는 정말 매력적이다. 루시에게 상처를 안주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눈물겹다. 헨리의 루시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매일 똑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그들을 통해 절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루시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수 있었다. 근래에 이렇게 괜찮은 로맨틱 영화가 있었던가. 시사회를 보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란 이렇게 전혀 기대밖의 수작을 발견하는 것이다.
난 사실 왠만한 춤영화는 다 좋아한다. 근데 이상하게 이 영화만은 그렇지 않다. 더티댄싱 – 하바나 나이트 는 엄밀히 말해 예전 패트릭 스웨이지의 더티댄싱의 속편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더 재미있을 뻔 했다. 50년대의 쿠바,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된다. 주인공 남녀가 정열적인 라틴댄스를 추고 사랑을 속삭인다고 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게다가 뜬금없이 쿠바혁명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리고 너무나 짧은 러닝타임.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는 라틴댄스에서 흥분을 느끼기는 커녕 지루함만 들었다. 그리고 카메오로 출연하는 패트릭 스웨이지 왜 이렇게 늙은 거야. 아 집에가서 예전의 더티댄싱이나 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춤영화 바람의 전설 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영화는 한개인의 일생을 다운 자서전적인 영화다. 그래서 상황들이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김수로의 캐릭터는 너무 코믹하다.
시츄에이션이 좋은 영화, 범죄의 재구성 말 그대로 범죄의 과정을 재구성한다. 결과를 보여주고 과정을 되집어 가는 영화에서 시나리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마지막 20분까지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팜므파탈 을 연기한
오버하지 않는 코미디, 웃음의 새로운 경지 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구자홍 의 마지막 늑대 는 여러모로 색다른 영화다.
한편의 영화가 이렇게 웃기기는 힘들다. 올해 본 영화중 가장 웃겼다. 간단한 설정과 장소만으로 이 정도로 밀도있는 웃음을 선사한다는 건 쉬운 건 아니다. 비록 원작과 연극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
작가주의 감독이 상업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난
아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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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야시스
P.S. 2004.4.27 게시판에 올린 글.. 영화 감상평을 게시판에 올린건 이게 마지막이다. 한달에 17편.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짓이다. 물론 이땐 회사 안다닐때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긴 했지만, 지금이라면 돈 주고 하라고 해도 절대 못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본 기간이 아닐까 하는데, 앞으로 다시 하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