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사마리아를 본 첫 느낌은 낯설고 이질적이라는것이다.
재영과 여진, 둘은 고등학생이고, 친한 친구사이이고, 유럽여행을 위해 원조교제를 한다. 재영은 항상 웃고 있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으며 오히려 ‘바수밀다’ 와 같이 남자들에게 쾌락을 주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한다. 이걸 바라보는 여진은 그저 방관자로써 지켜볼 뿐이다. 그러다 재영은 경찰에 걸리게 되고,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죽는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자신을 ‘바수밀다’ 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재영이 왜 경찰이 들이 닥칠 때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재영은 아무런 죄를 지은게 없다. 그저 남자들에게 쾌락을 준 것 뿐이다. 재영 입장에서는 이건 원조교제가 아니라 너무나 힘들게 살고 있는 남자들을 구원하는 행위이다. 이것보다 더한 자기기만과 위선이 또 있을까?
이제 여진은 재영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남자들에게 구원을 주는 ‘바수밀다’의 역할을 수행한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그래서 재영은 다시 여진의 몸속으로 환생한 것이다. 행복하라는 여진의 말에 남자들은 거짓말처럼 회개한다.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자신의 딸 같은 여자아이의 육체를 탐하는 더럽고 추한 인간에서 ‘바수밀다’ 인 여진의 따뜻한 한마디에 개과천선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난 이 장면을 보면서 실소했다. 만일
면 이 모든 죄의 근원은 딸의 몸을 탐하는 남자들인 것이다. 그들에게 ‘바수밀다’ 와 같은 형이상학적 헛소리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딸을 탐하고,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 그들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정당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수 없다.
딸과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난 이장면을 보면서 죽음이 떠올랐다.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은 두사람,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오열하는 아버지, 새벽에 집 앞에서 오열하는 딸…그들은 왜 솔직하지 못할까? 난 이 영화의 결말은 2가지의 버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여진의 꿈으로 보여지는 여진의 죽음, 난 이걸 아버지의 딸에 대한 용서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찰에 끌려가는 아버지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쫒아가는 딸의 모습… 그래서 ‘사마리아’ 는 나에게 어떤 영화였을까? ‘바수밀다’ 라는 천사의 모습으로 악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것, 여진의 아버지의 행동으로 보여지는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처단 2가지 중 어떤게
희야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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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행
P.S. 2004.3.8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김기덕 영화는 이게 처음이라서 놀라움으로 감상했다. 중간까지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가공하지 않는 신선함을 느꼈으며, 마지막 장면은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명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