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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칠리리딩) 통찰의 시대 - 뇌과학이 밝혀내는 예술과 무의식의 비밀

by leeyj. 2014. 12. 18.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켄델은 20세기 초 클림트, 코코슈카, 실레 3사람으로 대표되는 표현주의 미술과 인지심리학에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치료 기법을 도입한 프로이트, 내면의 독백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슈니츨러 5명의 모더니스트를 통해 예술과 인지심리학, 생물학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는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저자는 다윈주의자로써 진화심리학적 방법론 으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에서 유행했던 표현주의 미술을 분석하는데 당시 회화의 특징은 사진의 등장으로 더 이상 사물을 정확히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화가들이 사물의 겉표면 밑에 숨어있는 진실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얼굴, 손, 몸을 과장하는 기법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클림트는 대표작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에서 의도적으로 모델과 배경 사이를 흐릿하게 처리하고, 코코슈카는 오귀스트 앙리 포렐의 초상화 에서 마치 엑스레이를 통해 보듯 초상화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앙리 포렐은 아마 자신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실레는 다양한 형태의 나체 자화상 에서 손과 몸, 색채와 관절의 과장으로 관람객 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에 이러한 표현주의 미술이 유행하게 된 이유로 과학자, 화가, 소설가 등 당대 지식인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을 벌인 살롱이라는 지적 공간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분위기 에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라는 심리 기법으로 환자를 치료하게 되는데, 동료인 브로이어의 환자였던 베르타 파펜하임의 히스테리 증상 연구 과정에서 증상의 원인을 그녀의 몸에서 찾은게 아니라 어린 시절 병자였던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생긴 감정이 분출되지 않고 억압되어 있었고, 과거의 억압된 경험을 찾아 감정을 해소하여 증상을 치료하는데 성공한다. 그러한 치료기법을 토대로 무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인지심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 

 

전반부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3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슈니츨러의 작품을 소개한 후 최근까지의 뇌 생물학의 연구결과를 토대로한 과학적 방법으로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볼 때 관람자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세밀하게 기술한다. 저자가 도입부 에서 밝히듯, 기존의 미술사에 대한 연구와는 다르게 전체론이 아닌 환원론으로 아주 작은 부분까지 분석한다.

 

책 후반부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술사학자인 곰브리치의 "관람자의 몫" 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그는 인지심리학자인 크리스의 영향을 받아 미술사를 생물학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볼 때 관람자는 2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는데, 첫번째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터 갖고 있다는 외부 세계에 대한 표상체계인 상향식 처리 과정으로 생물학적으로는 망막 -> 측두엽의 시각영역인 외측무릅핵 -> 뇌 뒤쪽에 있는 시각피질 까지의 경로이다. 이곳에는 시각을 다루는 세포영역이 30군데가 있는데 직선, 윤곽선, 색채, 명암을 담당하는 개별 세포가 있어 사물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물에 대한 인지가 끝나면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필요로 하는 하향식 처리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향식 처리 과정은 두정엽으로 가는 어디 경로와 측두엽으로 가는 무엇 경로로 갈라지게 된다. 관람자의 뇌는 측두엽 내의 해마, 편도체 세포의 조합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림속 모델 또는 풍경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똑같은 미술 작품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 평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곰브리치는 미술에서 관람자가 없는 화가의 그림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견해를 밝힌다. 그의 독특한 미술 분석 기법인 "관람자의 몫" 은 이 책 전체의 주제이기도 한 예술과 과학의 대화의 결과로 생긴 "감정신경미학" 의 지향점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상향식, 하향식 처리 과정은 이 책 전체에서 계속 되풀이되서 표현되는데, 1차 상향식 -> 2차 하향식 은 시각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한 무의식과 의식의 흐름, 다름 사람의 생각을 읽는 감정이입의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저자는 상향식 처리 과정은 프로이트의 통찰력으로 알려진 무의식의 발현과 비슷하고, 인간 진화의 초기 단계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오늘날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론의 진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그가 제시한 심리 구조도인 자아(전의식) -> 전두엽의 등쪽 전두 피질, 이드(무의식) -> 측두엽 안의 편도체, 선조체, 시상하부, 초자아 ->전전두엽의 배쪽 전두 피질로 각각 대응하며 이는 현대 뇌 생물학이 그의 이론에 빛을 지고 있는 거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원시적인 감정체계(편도체, 선조체)가 더 고등한 집행체계(전전두엽의 배쪽 전두 피질)에 의해 조절되고 억제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미래 마음의 생물학의 과제이기도 한 예술가의 재능, 창의성의 문제를 논의한다. 창의성은 뇌의 어느 부위에서 생겨날까, 최근의 연구결과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떠오는 아이디어가 오른쪽 측두엽의 한 영역(전상측두회) 에서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창의성은 단순히 떠오른다고 되는게 아니라 뇌의 고등한 영역에서 과거의 경험과 결합하여 기억으로 새겨져야 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기술한다. 즉, 창의성은 부화(무의식의 영역인 전상측두회 세포의 상향 처리 과정) -> 펼치기(측두엽의 기억과 관련한 세포의 하향 처리 과정) 2단계가 필요하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아직 이 분야에 대해서는 미지의 영역이 많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이고 있다.

 

- 감정신경미학 관점에서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단계 - 

 

1단계 상향 처리 과정 (망막 ->시상의 시각영역인 외측무릅핵 -> 뇌 뒷쪽의 시각 피질) : 외부 세계 표상을 위해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컴퓨터 칩 같이 설계되어 있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인식. 

 

2단계 하향 처리 과정 (어디경로 : 시각 피질 -> 두정엽의 시각 인식 세포, 무엇경로 : 시각 피질 -> 측두엽의 시각 인식 세포, 해마, 편도체) :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미술 작품을 해석,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 (관람자의 몫)

 

하향 처리 과정을 통해 재해석한 미술 작품은 각자 자신만의 기준으로 측두엽 안의 해마(단기기억 저장) 에서 사라지거나 시간을 두고 대뇌피질(장기기억) 로 이동하여 평생을 두고 기억하게 됨. 간혹 편도체 안의 호르몬의 영향으로 미술작품에 대해 과도한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미술 작품 속의 인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현상도 생길 수 있음.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는 정말 놀라운 책이다. 미술, 인지심리학, 생물학 전반에 걸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한권의 책으로 100년간의 대뇌 생물학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생물학 전반에 대한 전체론적 관점과 뇌 세포 하나의 역할까지 파고드는 환원론적 관점 2개를 모두 만족시킨다.

 

대뇌 생물학의 어려운 개념을 표현주의 미술작품과 연관짓는 통찰력은 그의 평생의 노력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이 책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근본적인 차이인 감정이입과 창의성에 대해서 심도있게 논의했고, 해답에 접근한 건 아니지만 미래의 연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갖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어봐야 할 정말 보기 드문 대단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