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 이건 전쟁시뮬레이션 게임이야
우선 나의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느낌을 말해야겠다. 상업영화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극한의 지점까지 보여줄 수 있는 비주얼을 통해 쾌감을 준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더 이상 나가지는 못한다. 등장인물들의 세심한 묘사 (심리적인 요소까지 포함해서), 관객들을 울고 웃기는 풍부한 감성,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물들에게 동질감을 느낄수 있게 하는 대본의 치밀성을 갖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다는 건 진정 꿈에 불과한 것인가.
영화가 시작되면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가득찬 ‘진태’ ‘진석’ 두 형제의 장난어린 표정들을 보여준다.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도 허용치 않을만큼의 일상의 행복은 전쟁을 알리는 포탄소리에 산산조각 나고 만다. ‘진태’ ‘진석’ 이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가면서 이 영화의 진정한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하나의 논점을 말해야겟다. 아군진영에 갑작스런 폭발음이 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 - 인물들의 바로 코앞까지 들이대면서 흔들리는 카메라, 마치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인간과 벌레들의 전쟁장면을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모습 또는 현실에 적용해보자면 걸프전에서 전쟁의 상황을 생방송하는 걸 보는듯한 생생함 - 은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낸 리얼리즘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었다. 끝을 모르고 진행되는 전투장면들에서 난 전쟁의 엔터테인먼트한 점을 발견했다. 빗발치는 총알은 레이저 처럼 선명하게 보이고, 거기에 차례차례 리듬을 맞춰가듯 죽는 사람들, 곧이어 수류탄에 의해 사람들은 종이처럼 찢겨진다. 거기다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영웅적 존재인 ‘진태’가 혼자서 빗발치는 총알을 유령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점점 가속되는 영상과 음향효과, 몇번에 걸치는 그런 장면들을 지나게 되면, 우리는 드디어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진태’ ‘진석’ 두형제의 운명을 가르는 전투에서 적군 위로 쏟아질듯이 날아오는 비행기들,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의 시점에서 쉴세없이 쏟아지는 총알들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쓰러지는 병사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역설적으로 환상적인 이 장면에서 내가 느낀건 “이건 전쟁시뮬레이션 게임이야” 그냥 단순한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로 즐기기에는 6.25 전쟁이 갖는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순수한 영화미학적 차원에서 보자면 이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가치들 - 형제간의 사랑,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무너지는 인간성의 문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광기에 휩싸인 국가의 일부 지도층에 의해 희생된 개인들 (사실 그들은 이념이나 사상에는 전혀 관심없다.) - 에 우선해서 극도의 현실성이 가미된 전투장면들만을 뮤직비디오처럼, 새로 출시된 전쟁시물레이션 게임처럼 시각적 즐거움에 대한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속에서 난 “우리의 기술력으로 여기까지 표현할 수 있어” 라고 하는 감독의 일종의 자랑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강제규’ 감독이 후반에 사람들을 울리게 하기 위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난 그들의 극중 이름을 도저히 기억 못하겠다.) 의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주연인 ‘진태’ ‘진석’ 두사람을 제외하고 나에게 인상을 주었던 캐릭터는 ‘
이제, 영화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또 하나의 논점에 대해서 말해야 겠다. ‘진태’ ‘진석’ 두 형제의 우정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신성함이 있다. 형은 무조건적인 희생을 통해 동생을 집에 보내기 위해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서 내가 궁금한 건, ‘진태’가 왜 미쳤는가 하는 것이다. 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해서라기 보기에는 그의 행동은 너무나 급진적 이고 충동적이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전투에 적극적이 되고, 영웅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전쟁은 그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광기를 불러온 것인가, 아니면 평범한 구두딱이 로서 동생에게 구두를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청년의 착한 본성을 파괴한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 ‘진태’ ‘진석’ 두 형제가 서로 적이 되서 싸우는 치열한 상황에서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긴장감을 느끼진 못했다. ‘진태’ ‘진석’을 연기한 ‘
그리고 한가지 내가 정말 궁금하게 생각하는게 있다. 우리세대는 6.25 를 모른다. 그건 역사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실재적인 의미에서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가 갖는 공통점일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엄청난 흥행과 관심은 진정으로 역사의 비극에 동참하는 의미일까? 지금 여기서 그걸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직접보고 느껴보라고 할 수밖에...
요술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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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004.2.7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대중적으로는 훌룡했지만, 6.25전쟁을 오락적으로 묘사해서 안좋아했던 영화다. 장동건, 원빈 그리고 이은주 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그리고 잠깐 출연한 최민식의 북한 인민군 사령관 연기는 보는내내 감탄사가 나왔다. 이 당시의 최민식은 잠깐의 출연으로도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넣은 탁월함이 있었는데, 요즘은 예전의 카리스마가 많이 사라진거 같다. 그나마 잘 보이지도 않고...